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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세상 촉] 리더는 맨 마지막에…

작성일 : 2022.11.23 16:07

작성자 : 양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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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1. “내 뒤에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다. 귀관들을 모두 무사히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분과 하나님 앞에 이것만은 맹세한다.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고 맨 나중에 나오겠다. 내 뒤에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 우리는 죽든 살든 같이 고국에 돌아온다.”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 2002년 개봉)’에서 대대장 할 무어 중령은 이처럼 비장하게 말한다.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사선을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도 자신이 마지막까지 부하들의 안위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대원들은 리더인 무어 중령을 신뢰했다. 영화에서는 아슬아슬하고 처절한 전투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무어 중령의 모습이 그려진다. 

#2. “해병대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

미국 해병대에는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Officers eat last)”라는 룰이 있다. 해병대원들은 최하급 졸병이 가장 먼저, 최상위 상관 가장 나중에 배식을 받는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그런 하급자 우대 문화가 전통이 된 것이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책에서 “미국 해병대가 세계 최고의 부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장교는 마지막에 먹기 때문”이라는 퇴역 장교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한다. 철저한 규율과 엄격한 군기가 기본이지만, 리더가 부하를 예우하며 솔선수범하는 과정속에서 장병들 사이에 리더에 대한 신뢰와 존경과 자부심이 쌓여 최강 해병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3. “코로나 공포, 선장이 마지막에 내렸다” 

2020년 2월 일본 요코하마항. 코로나19 확진자가 696명이나 무더기로 나오면서 한 달 가까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고립됐던 3,700여 명의 승객들은 ‘바다 위의 감옥’에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20년 3월 1일, 승객들은 28일간의 고립 끝에 배에서 뭍으로 나왔다. 그날 밤, 131명의 항해사와 승무원 중 가장 마지막에 하선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제나로 아르마 선장이었다. 전 세계 언론은 이 장면에 주목했다. 선장 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그는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힘을 보여줘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승객에게 보내며 용기를 북돋웠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보도했다. 

#4. “리더는 맨 마지막에 말한다”

‘A1 Garage Door’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미 멜로는 리더는 직원들이 다 말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말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직원들이 말하기 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거나, “김 부장이 말하기 전에 내가 한마디만 할게”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리더가 방향을 정해 놓고 얘기하는 데 누가 그 반대되는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리더가 먼저 말해버리면 직원들은 입을 다물게 되고 의사소통에 동맥경화가 생겨 회사가 권위적으로 바뀐다는 주장이다.

위 네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리더는 맨 마지막에’다. 리더는 자신보다는 부하를 우선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이다. 사선을 넘나드는 전장에서, 군기 세기로 유명한 해병대에서, 승객들이 절망한 공포의 쿠르즈에서, 수직적인 직장 문화 속에서 ‘참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울림 있는 사례다. 리더십은 계급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품성과 솔선수범에서 나온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리더십은 계급장 아닌 솔선 품성에서 분출  

말이 쉽지 그런 리더십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리더십은 정직하고 솔직하게 책임지는 과정에서 조직원의 신뢰를 받을 때 탄탄해진다. 자신의 말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조직원의 얘기를 경청하며, 싫은 소리와 쓴소리도 들어야 하는 게 리더의 자리다. 그만큼 리더는 고달픈 자리이기도 하다. 고달프고 고된 과정을 이겨내고 조직원과의 소통으로 신뢰를 얻는 순간, 그 리더는 진정한 리더가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는 과연 ‘맨 마지막에’를 자처하는 리더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소위 사회적 지도층부터 그저 ‘남 탓’만 하며 자기는 제일 먼저 빠져나가려 한다. 그중 정치인들의 행태는 품격을 의심케 한다. 국회의원은 엄연한 국민의 대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면 지역주민의 대표이니 당연히 주민의 리더다. 그런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정쟁과 거친 말싸움, 나만 먼저 빠져나가려는 행태는 아무리 우리의 정치무대 수준이 3류라고 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 “너희는 안 그랬니?” “너희는 더 그랬잖아”와 같은 ‘내로남불’에는 피아 구분이 없다. 이런 진흙탕이 떠 있을까 싶다. 

희망의 꿈을 꾸게 만드는 게 리더

우리는 ‘리더십’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미국 6대 대통령 존 퀴시 애덤스는 리더의 의미를 이렇게 압축했다. “당신의 행동이 타인들로 하여금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영감을 불어넣는다면 당신은 분명 리더다.”(사이번 사이넥의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중에서) 

얼마나 멋진 말인가. 리더는 조직원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자기계발의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이 더 많이 일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조그마한 조직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를 바가 없다. 사회 각계와 여의도 국회, 대통령실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리더들이 ‘맨 마지막 리더십’을 되새겨야 한다. 

‘맨 마지막 리더십’은 축약하면 ‘솔선의 리더십’, ‘배려의 리더십’, ‘겸양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무대에만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치단체와 면 단위, 각 마을 공동체 중에서는 리더가 더 멋진 리더십을 발휘하는 곳도 있다. 그런 리더가 있는 곳은 공동체가 윤활유를 친 것처럼 매끄럽게 돌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리더십은 더 강해진다. 그런 이치를 모르는 건 오직 정치판뿐이다. 국민들이 한 표, 한 표를 더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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