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1.23 16:04 수정일 : 2022.11.23 16:07
작성자 : 배상복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다르다’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
상호 존중과 공존에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
요즘 서울 시내에서 주말마다 벌어지고 있는 집회는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양측이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 각자 주장을 펼치면서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나는 옳고 너는 잘못이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상대를 비난하는 글이나 동영상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갈등의 골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자신과 다른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우리의 언어 문화를 보면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는 말보다 “너와 나는 생각이 틀리다”는 식의 표현에 익숙해 있다. 말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다르다’ 대신 ‘틀리다’는 표현이 튀어나오곤 한다. 이처럼 ‘다르다’와 ‘틀리다’를 동일시하거나 ‘틀리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은 건전한 토론과 상호 공존에 길들여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나와 다른 것을 아예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다’는 단순한 차이를 의미
우선 ‘다르다’와 ‘틀리다’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뜻으로 쓰인다. “나는 너와 다르다” “군자와 소인은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이 다르다” “동전의 앞뒤가 다르다” 등처럼 사용된다. 이때의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다. ‘다르다’는 단순한 차이를 나타내므로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틀리다’는 우선, 셈이나 사실 등이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답이 틀리다” “계산이 틀리다” 등처럼 쓰인다. 이때의 반대말은 ‘맞다’이다. ‘틀리다’는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하다는 의미도 있다. “오늘 일을 마치기는 틀린 것 같다” “일찍 퇴근하기는 다 틀렸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틀리다’는 마음이나 행동 등이 올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는 인간이 틀렸어” “그 사람은 외모는 출중한데 성격이 틀렸어”가 이런 예다.
‘틀리다’는 잘못된 것이라는 뜻 내포
이처럼 ‘다르다’와 ‘틀리다’는 명확히 구분된다. ‘다르다’의 반대말이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말이 ‘맞다’ ‘옳다’인 것만 봐도 두 단어의 뜻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 치면 ‘다르다’는 ‘different’, ‘틀리다’는 ‘wrong’에 가깝다. ‘다르다’는 단순한 ‘차이’를 뜻하지만 ‘틀리다’는 잘못된 것이므로 바로잡거나 억눌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와 “생각이 틀리다”는 많은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것=틀린 것’이라는 흑백논리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 독재를 거치면서 획일적 사고와 행동을 요구받고 이와 다른 것에는 사회적 억압과 고통이 가해진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다른 것은 바로 틀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르다’ ‘틀리다’ 동일시하는 언어습관 고쳐야
언어와 사회는 밀접한 관계를 갖게 마련이다. 선과 악, 합법과 불법 등 규범적 가치관이 강조되는 사회에선 ‘틀리다’는 식의 언어 사용 빈도가 높고, 규범적 가치관이 완화되고 분권화된 사회에서는 ‘다르다’는 식의 언어 사용 빈도가 높다고 한다. ‘다르다’보다 ‘틀리다’는 말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아직 전근대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사회 문화가 언어 사용에 영향을 주고, 언어 문화는 우리의 사고를 제약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동일시하는 언어 습관부터 고쳐야 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으니 내 방식대로 바로잡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대립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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