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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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의병 열전] 12. 김원식·김장석·오윤영 의병

작성일 : 2022.11.23 15:41 수정일 : 2022.11.23 15:45

작성자 : 조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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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화에서 의병 활동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순국하거나 투옥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료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강화 의병들의 공적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잠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지난해 11월 4일 인천대학교(이사장 최용규)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화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신청’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강화군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침략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30명을 추가 발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강화군은 현재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 및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강화 의병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강화군에서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인 김원식·김장석·오윤영 의병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김원식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전등사(傳燈寺) 남문현(南門峴)

김원식(金元植) 의병은 강화 출신으로 1907년 4월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호종(護從)하고 돌아온 이능권(李能權)이 이준 열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퇴위되었다는 소식에 300명에 이르는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을 조직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했는데, 김원식 의병도 이능권 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이능권은 총기 구입을 위해 강화군 길상면, 상도면 등지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고, 모금된 군자금으로 총기 구매를 위해 나섰다가 1908년 12월 14일 피체되었는데, 김원식 의병은 이에 앞서 12월 10일 남궁문경(南宮文景), 남궁경찬(南宮敬鑽), 이원신(李元信), 이호춘(李浩春) 등과 함께 인천경찰서 순사대에 피체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결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호종(護從) : 보호(保護)하며 뒤좇음. 또는 그 사람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김장석 의병

본적 : 미상
생년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 삼산면(三山面) 석포리(石浦里)

김장석(金長石) 의병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킨 지홍윤(池弘允)·박계석(朴啓石)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1908년 음력 7월 대한제국 기병대 부교(副校) 출신 김용기(金龍基, 일명 金鳳基) 의병장이 강화도에 진출하여 지홍윤·박계석을 의진의 중대장으로 삼아 의병투쟁을 전개할 때 김용기 의진의 소모장(召募將)으로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에서 일본 군경은 물론, 일제 밀정과 고총(古塚)을 도굴하던 일본인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소모장(召募將) :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품을 확보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

 

오윤영 의병

본적 :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덕하리
출생년도 : 1878
사망년도 : 1971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덕하리

오윤영(吳允榮) 의병은 이동휘(李東輝) 강화진위대장 휘하에서 부교(副校)로 복무하였고, 1907년 8월 9일 당시 강화분견대의 봉기 때 의병대열에 참여하여 김동수(金東洙)와 함께 영정포(領井浦)로 나아가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일진회 출신 강화군수 정경수를 붙잡아 태형을 가했고, 양사면 철산리에 있는 강화 일진회장 양학수를 처단하고, 그의 집을 불사르는 등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였다.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서간도 관전현(寬甸縣)으로 가서 김덕삼(金德三) 유격대에서 활약하다 청산리전투에도 참전하였다. 그 이후 피체되어 살인강도 등의 혐의로 10여 년의 옥고를 겪은 후 강화군 양사면 덕하리에서 1971년 향년 9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진위대(鎭衛隊) : 1895년(고종 32년) 9월 지방의 질서 유지와 변경 수비를 목적으로 설치된 최초의 근대적 지방 군대. 중앙군은 친위대(親衛隊)로, 지방군은 진위대(鎭衛隊)로 각각 나뉘었다. 1907년 군대 해산령으로 없어졌다.
*부교(副校) : 조선 후기의 육군 부사관. 갑오개혁의 군제(軍制) 개편에 따라 두었다. 정교(正校)의 아래, 참교(參校)의 위이며 지금의 중사(中士)급이다. 당시 급료는 정교는 10원(元), 부교는 9원, 참교는 8원, 병졸은 5원 10전이었다.
*일진회(一進會) : 1904년 일본이 고문정치만으로 한국정부를 간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친일적 민의(民意)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직한 단체. 러일전쟁 때 일본군의 통역이던 송병준(宋秉畯)과 구(舊)독립협회의 윤시병(尹始炳) ·유학주(兪鶴柱) 등이 1904년 8월 18일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했다가 8월 20일 일진회로 고치고 회장에 윤시병, 부회장에 유학주를 추대하여 발족하였다.


▲성재 이동휘(1873-1935) 선생이 육군참령으로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를 지휘할 무렵에 부대 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앞줄 중앙이 이동휘 참령(參領, 현 소령)이며, 조상석 정위(正慰, 현 대위), 홍우섭 정교(正校, 현 상사), 박제언 참위(參慰, 현 소위). 유홍준 참위, 최영순 참위, 김정배 정교 등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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