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1.09 16:49
작성자 : 양영유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인리히(Heinrich Principle)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1931년 발견한 법칙이다. 그는 수많은 산업재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미 있는 통계학적 규칙을 찾아냈다. 특정 사건이 대형사고(major incident)로 이어지기 전에는 29번의 작은 사고(minor incident)가 발생하고, 300번의 잠재적 징후들(near misses)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1 대 29 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까닭이다.
하인리히 법칙, “사고는 징후가 있다”
이 말은 일상생활에도 적용된다. 부부가 싸움을 하고 이혼할 경우 갑자기 이혼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사소한 일로 다툼을 벌이다가 그런 다툼이 잦아지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결국엔 남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가 원수가 되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소한 오해나 의견 충돌이 빈번해지다 보면 결국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이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조금씩 아픈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나중엔 큰 병을 얻게 된다. 평소의 건강 시그널을 잘 감지하면 예방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농기계도 비슷하다. 조그만 나사 하나가 빠지면 곧장 끼워 넣으면 안전에 탈이 없다. 하지만 방치하고 쓰다가는 다른 곳이 고장 나 10만 원을 들여 고쳐야 하고, 나중에는 기계가 망가져 100만 원을 들여도 고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하인리히 법칙을 1 대 10 대 1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 연유다. 조그만 위험 징조를 발견하면 즉시 조치해야 하는데 그걸 방치하면 큰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하인리히 법칙은 ‘여러 단계의 징후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위험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통한의 대형사고를 여러 번 경험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밤의 이태원 참사…. 이런 대형사고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한단 말인가.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아찔하다. 대형사고는 사전에 모두 전조가 있었다. 아파트에 금이 가고, 다리 난간에 녹이 슬고 이음새가 헐거워지고, 무리한 증축으로 백화점이 흔들리고, 세월호를 증축해 짐을 잔뜩 싣고, 이태원에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압사 위험이 있다는 시그널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 전에 위험 시그널 있었다
용산 이태원 핼러윈(Halloween) 참사 전에 여러 시그널이 있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폭주한 신고 전화는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젊은이들의 절규였다. 그런데도 경찰은 안이했고 소방 당국은 역부족이었다. 일부에선 “대체 핼러윈이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도 한다. 추석과 설날 같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을 놔두고 왜 정체불명의 서양 축제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다가 불행을 겪느냐는 것이다.
핼러윈은 원래 서양의 축제다. 원래 고대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밤에 유령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 10월이었다. 그래서 10월 31일에 귀신을 쫓아내려 악령 분장을 하고 집단 제사를 지냈다. 어찌 보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샤머니즘 풍습이었다. 이런 풍습은 핼러윈 축제로 발전했다. 유럽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일종의 축제가 됐다. 미국에서는 호박이 흔해 핼러윈 데이에 호박에 등불을 달았다. 호박이 핼러윈의 상징이된 연유다. 그냥 호박이 흔해서 그랬을 뿐 특별한 의미도 없었다.
서양의 핼러윈, 청년의 시월 축제로 바뀌어
필자는 20년 전에 미국에서 산 적이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연수할 당시인데 그때 핼러윈을 처음 경험했다. 동네 꼬마들이 이웃집을 돌며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Trick-or-Treat)”라며 귀엽게 깜짝 협박을 했다. 얼굴에 분장을 하고 귀신같은 탈을 쓰고 요상한 옷을 입었다. 아이들이 그러니 얼마나 귀여운가. 아이들은 재미있어했다. 어른들은 사탕을 듬뿍 쥐어 주며 아이들과 같이 즐겼다.
그런 어린이들의 귀여운 놀이는 점차 젊은이들의 축제로 발전했다. 젊은이들은 분장을 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얽매인 사회 규범, 어른들의 간섭에서 탈출해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했다. 분장은 요란하고 화려해졌다. 그런 문화가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홍익대와 신촌 등 젊은이의 거리에서 꿈틀거리다가 2000년대에는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젊은이의 가을 축제 트랜드가 되었다.
가수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 울려 퍼지던 날, 대참사가 일어났다. 코로나19로 억압받았던 ‘마스크’ 시대가 끝나면서 젊은이들은 해방감에 이태원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불행이 급습했다. 속속 드러나는 수사 결과를 보면 총체적인 인재(人災)였다.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던 그 시간에 경찰청장은 폭탄주를 마시고 충북 제천의 캠핑장에서 자고 있었고, 서울경찰청장은 집에 있었고, 용산 경찰서장은 늑장을 부렸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강화군도 군민 안전에 더 신경 써야
여러 징후가 있었다. 사고 몇 시간 전부터 “인파가 몰려 큰일 날 것 같다”는 시그널이 있었고, 참사 바로 직전에는 “압사 당할 것 같다” “죽을 것 같다”는 신고 전화가 폭주했다. 그런데도 보고체계는 엉망이었고, 재난통신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만일~”을 얘기해본들 가슴만 미어진다. 하인리히 법칙이 작동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철저히 책임소재를 가려 일벌백계해야 한다.
우리 강화군도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공사 현장과 해양의 안전을 촘촘하게 점검하고, 1년 내내 농기계와 더불어 사는 농민의 안전도 돌봐야 한다. 가을철 행락객의 안전과 교통사고 대책도 다시 점검해야 있다.
군에서 열렸던 열린음악회나 가을 축제 등 대형 행사가 무탈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군청과 경찰, 소방 공무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린다. 안전에는 졸업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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