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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한·중·일, 바보 구별법이 달라요

작성일 : 2022.11.09 16:47

작성자 : 배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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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한국은 콩·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
중국은 오곡, 일본은 말·사슴 구분 못하는 사람

          
한·중·일 세 나라는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에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는 대부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 단어의 용법에 차이가 생기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이 바보를 구분하는 방법과 그에 따른 단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또한 삼국은 같은 단어의 어순을 뒤바꿔 사용하는 것도 적지 않다. ‘공부(工夫)’의 경우에는 한자는 같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한·중·일은 응원 구호도 각기 다르다.

중국 ‘우구푸휀(五谷不分)’, 일본 ‘바카(馬鹿)’

한국에서는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 즉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숙맥’이라 부른다. 숙맥(菽麥)은 한자어로 콩(菽)과 보리(麥)를 뜻한다.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의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이다.

‘숙맥불변’에서 ‘불변’이 생략되고 ‘숙맥’만 남아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은 너무 순진해 숫기가 없는 사람이나 재미없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바보를 부를 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일까? 아니다. 중국에서는 콩·보리가 아니라 오곡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다. ‘우구푸휀(五谷不分)’이라고 해서 다섯 가지 곡식, 즉 쌀·보리·콩·조·기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멍청이라 부른다.

‘우구푸휀’이 요즘은 생산 노동에서 이탈해 실천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말인지 사슴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다.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바카(馬鹿, ばか)’라 부르는데 말(馬)과 사슴(鹿)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우리말 어휘를 총동원하면 ‘바카’는 바보, 천치, 멍청이, 얼간이, 맹꽁이, 멍텅구리, 반편이, 반실이를 뜻한다.

간혹 우리가 속어로 ‘빠가야로’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바보자식 또는 멍청한 놈을 뜻하는 일본어 ‘바카야로(馬鹿野郞, ばかやろう)’에서 온 말이다.

어순이 뒤바뀐 한·중·일 한자어

같은 한자어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뒤바뀐 어순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지 않다. 우리는 ‘흑백(黑白)’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백흑(白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한국과 일본이 어순을 바꿔 사용하는 것으로는 약혼(約婚), 위협(威脅), 영광(榮光)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각각 혼약(婚約), 협위(脅威), 광영(光榮)이라고 한다.

우리말과 중국어가 어순이 뒤바뀐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평화’가 있다. 우리말로 ‘평화(平和)’를 중국에선 ‘화평(和平, 허핑)’이라고 한다. 우리는 ‘평화조약’이라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화평조약’이라고 한다. ‘중·일 평화조약’을 ‘중·일 화평조약’, ‘미·소 평화회의’를 ‘미·소 화평회의’라 부른다. 평화롭게 국제사회의 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뜻의 화평굴기(和平崛起)도 ‘화평(和平)’이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소개(紹介), 언어(言語), 채소(菜蔬), 운명(運命), 고통(苦痛)’을 중국에서는 각각 ‘개소(介紹, 지에샤오), 어언(語言, 위이엔), 소채(蔬菜, 슈차이), 명운(命運, 밍윈), 통고(痛苦, 통쿠)’라 한다. 어순이 뒤바뀌긴 했지만 의미는 일치하는 것들이다. 같은 한자어권이면서도 이렇게 어순을 달리하는 것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중·일이 저마다 다른 ‘공부’ 

‘공부(工夫)’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가리킨다. “공부가 뒤떨어지다” “공부를 가르치다” “공부를 못하다” 등처럼 쓰인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에서도 공부가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어에서 공부(工夫), 즉 ‘구후(くふう)’는 ‘생각을 짜내다, 궁리하다’는 뜻이다. 이를 ‘고후(こうふ)’로 다르게 읽으면 공사장의 인부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중국어로 ‘공부’는 시간·짬·틈을 의미한다. 일본어 ‘공부’, 즉 ‘궁리하다’에 해당하는 중국어는 ‘궁푸(功夫)’다.

‘공부(工夫)’는 원래 좋은 방법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 또는 품성의 수양, 의지의 단련 등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삼국이 조금씩 다르게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본래 의미에서 확장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뜻으로 일본에서는 ‘공부’ 대신 ‘면강(勉强)’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한국 파이팅! 중국 지아요우! 일본 간바레!

한·중·일 세 나라는 운동 경기의 응원 구호도 각기 다르다. 우리는 우리식 영어(콩글리시)인 ‘파이팅(fighting)’이나 ‘플레이, 플레이(play, play)’를 주로 쓴다. 요즘은 ‘파이팅’을 순화한 우리말 ‘아자아자’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파이팅’은 최근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한국어로 등록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응원할 때 ‘지아요우! 지아요우!’를 주로 외친다. ‘지아요우’를 한자로 쓰면 ‘기름을 넣다’는 뜻의 ‘가유(加油)’가 된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어라’는 의미이니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파이팅하자!’ ‘더욱 힘내서 분발하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은 ‘간바레(頑張れ, がんばれ)’란 말을 많이 쓴다. ‘간바레’는 ‘견디며 버티다’ ‘끝까지 노력하다’를 의미하는 일본어 간바루(頑張る, がんばる)의 명령형이다. 한·일 경기 중 많이 들려오는 일본 응원단의 함성 ‘니폰 간바레! 간바레!(日本, 頑張れ! 頑張れ!)’는 ‘일본, 끝까지 견디고 힘내라’ ‘일본 파이팅’ 또는 ‘일본 아자아자’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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