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9.21 02:14
작성자 : 양영유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1970년대 쌀이 부족하던 시절의 추억은 애달프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검사하셨다. 학생들은 모두 도시락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밥과 반찬 냄새가 교실에 진동했다. 선생님은 젓가락으로 도시락을 찔러보셨다. 혼식 비율은 쌀과 보리 7대 3. 말이 7대3이지, 어린이 입장에선 꽁보리밥이었다. 입이 칼칼했다. 쌀이 부족하던 시대에 군사정부는 서슬 퍼렇게 혼식을 강요했다. 국민은 아무소리 못 하고 따랐다.
70년대 혼식 검사, 節米운동까지
가정에서는 절미(節米)운동이 벌어졌다. 매끼 쌀 한 숟가락 덜 먹기 운동이다. 어머니는 쌀을 씻기 전 식구 수대로 숟가락으로 쌀을 덜었다. 덜어낸 쌀은 절미 통에 따로 담았다. 농촌에서 밥밖에 먹을 것이 없는데 그나마 마음껏 쌀밥도 먹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쌀이 부족하니 착한 국민은 그저 정부 명령을 따랐다. 면(面)에선 ‘절미 상(賞)’도 시상했다. 절미상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농부들은 통일벼를 심었다. “키가 작은 통일벼는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고 낱알도 튼실하다”며 농촌지도소 직원이 마을을 돌며 홍보했다. ‘아키바레’ 대신 통일벼가 논을 점령했다. 생산량은 늘었지만 밥맛은 떨어졌다. 그래도 쌀이 부족하니, 통일벼는 한때 식량부족의 효자 역항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신산(辛酸)했던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부모들은 희생했다. 당신들 밥그릇엔 보리밥을 담고, 지식들은 흰쌀밥을 먹였다.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러셨다.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쌀값 45년 만에 최대 폭락 ‘푸대접’
그리도 귀하고 귀하던 쌀은 이제 푸대접을 받는다. 쌀이 남아돌아 혼식 장려니, 절미 운동이니 하는 말은 고어(古語)가 됐다. 요즘, 그런 말을 하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영락없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도심 어린이들이 가을 들녘의 황금물결을 ‘쌀 나무’라고 한 지도 오래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그래도 쌀은 쌀인데 대우가 너무 시원찮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미 한가위를 전후로 햅쌀을 출하했다. 그런데 쌀값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떨어졌다. 조생종 벼를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사들이는 가격이나 도정 후 도매상에게 넘기는 햅쌀 가격이 폭락했다.
햅쌀 도매가는 1포대 20㎏에 4만 3,000원~4만 5,000원에 거래된다. 지난해 같은 시기 햅쌀 가격(5만 6,000원~5만 8,000원)보다 23.1%인 1만 3,000원 떨어졌다. 남부지방 기준으로 보면 전북지역은 산지 쌀값(80㎏ 기준)이 16만 7,344원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동기(22만 1,332원) 대비 75% 수준이다.
성난 農心, “애완견 사료값보다 싸다”
물론 올해는 추석이 일러 햅쌀이 일찍 출하돼 값이 떨어진 면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추수철인 10월 중순 이후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러자 일부 농민은 논을 갈아엎고 삭발투쟁까지 하고 있다. 일각에선 “쌀값이 애완견 사료값보다 더 싸다”고 항의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도심에서 기르는 애완견의 사료값이나 간식거리, 액세서리 값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쌀값이 개밥 값만도 못한 것은 참 개탄스러운 일이다.
쌀값 폭락의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식생활 패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1년 국민 1인당 116.3㎏이던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69.8㎏, 2021년에는 56.9㎏으로 줄었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한가마도 먹지 않는 시대가 오래됐고, 그나마 점점 덜 먹고 있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지니 밥에 손이 가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공급은 그대로니 쌀값이 떨어지는 건 시장원리로 보면 당연하다.
1인당 연간 57㎏밖에 먹지 않아
그렇지만 쌀은 여타 소비재와는 다르다. 식량 안보와 직결된다. 농민들은 쌀값 폭락의 주요 원인으로 잘못된 시장격리 정책을 지목한다. 양곡관리법상 시장격리는 시장에 풀리는 쌀 공급량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즉, 쌀 공급이 너무 많아 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시장에서 쌀을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고, 공급이 적어 값이 오르면 시장에 쌀을 푸는 방식이다. 그런데 쌀값 상승에 따른 시장 공급은 의무인 반면, 쌀값 폭락 시 시장격리 매입 여부는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매입 자체도 의무로 하자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도 시장격리 정책 보완을 놓고 논의가 한창이니 곧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런 정책으론 해마다 되풀이 되는 쌀값 전쟁을 막기 어렵다. 농정(農政)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식량 안보의 보루인 논을 갈아엎고 아파트나 공장을 짓기도 어렵다. 서울에서 강화로 오다 늘 마주하는 김포의 아파트촌은 사실 드넓던 김포평야를 갈아엎어 만든 것이다. 다시는 논으로 되돌릴 수 없으니 농민의 입장에선 마음이 아프다.
시장격리 정책 보완…곡물 자급률 개선을
따라서 쌀 수급 종합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 쌀은 넘치지만 다른 곡물은 자급률은 20%에 불과한 현실도 반영해야 한다. 현재 밀은 99.5%, 콩은 63.2%를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벼보다 수익성이 좋은 대체작물을 논에 심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강화에도 논에 포도를 심어 고수익을 올리고, 포도 축제를 통해 강화의 명품 포도를 알리고 있다. 이와 같이 농작물 수요공급 미스매치를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강화군에서는 농민들을 위해 ‘강화섬쌀 팔아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강화섬쌀의 우수한 품질과 맛을 전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알리는 방안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북 상주시는 최근에 상주쌀 10톤, 2,000만 원 상당을 미국에 수출했다. 낙동강변 사벌 평야의 비옥한 토지에서 기른 쌀이란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해풍(海風) 맞은 강화섬쌀이 수출 길에 오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노력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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