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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세상 촉] 고향의 한가위 추억

작성일 : 2022.09.06 17:42 수정일 : 2022.09.21 02:17

작성자 : 양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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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들녘에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가을의 초입입니다. 8일이 백로, 10일이 추석이니 계절의 변화를 새삼 온몸으로 느낍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고 낮볕이 따스한 가을의 문턱에서 한가위를 맞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잦은 비와 무더위에 시달리며 지루한 여름을 보냈는데 절기의 변신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풍성한 가을의 들녘처럼 우리의 마음도 모처럼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던 옛 한가위 

해마다 한가위가 되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의 한가위는 정말 정겨웠습니다. 타지에 살던 삼촌과 사촌 등 친인척들이 한가위엔 고향 큰 집을 찾았고, 집안은 식구가 서너 배로 늘었습니다. 궁핍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온 가족이 한가위를 전후로 2박 3일을 함께 보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종가댁 며느리는 고달팠습니다. 그 많은 친인척을 대접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오롯이 감당했습니다. 고향 강화 어머님들의 굽은 허리를 볼 때마다 옛 시절의 고달픔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동네 친구도 많았습니다. 경향 각지로 흩어졌던 친구들이 한가위엔 거의 다 모였습니다. 밤에 친구 집에 옹기종기 모여 탁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머니들은 친인척에다 자식 친구, 시동생 친구들까지 치다꺼리해야 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술상을 봐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이 지금 팔순, 구순의 할머니들이십니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자식 친구 술상까지 어머니가 다 차려줘 

한가위는 가족과 친구가 정담을 나눌 기회이지만, 때로는 불화도 일어나곤 했습니다. 출세가 뭔지, 돈이 뭔지, 도시 생활이 뭔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누구 집엔 무슨 일이 있었더라”, “친구끼리 주먹다짐이 있었더라” 등의 갖가지 얘깃거리가 담장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엔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왕래했으니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겠지요.

한가위는 꼬마들에겐 귀한 명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인척한테 용돈도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세뱃돈을 받는 설날보다야 못 하지만, 한가위도 어린이들에게는 ‘용돈 확보’의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일곱 글자는 꼬마들에겐 그런 풍성함이 담겨있는 함축적인 말로 통했습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을 흥얼거리던 어린 시절은 행복한 추억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처럼 올 추석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명절이 이번 추석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어 활기를 띨 전망입니다. 그렇지만 건강은 유의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물러난 것도, 퇴치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매일 수 만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사망자도 많습니다. 우리 고향 강화에도 전체 누적 확진자가 2만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강화 인구가 7만 명인데 참 많은 숫자입니다. 이번 추석도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도심선 추석 행사, 고향선 특산물 홍보

코로나19를 떨쳐내려는 듯 서울에서는 한가위를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9일(금), 11일(일), 12일(월) 등 3일간 ‘한가위, 보름달 걸렸네’ 행사를 엽니다.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됨에 따라 대면 행사를 확대하고 세시 풍속 전통문화 체험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게 특징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8호인 ‘우수영강강술래’ 공연, 경남도무형문화재 36호인 ‘거창삼베길쌈’ 시연과 체험, 풍년 기원 ‘이천 거북놀이’, 햇벼로 첫 수확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올개심니’ 체험도 펼쳐집니다. 

향수를 확 자극하는 행사도 있습니다. ‘교복 입고 찰각’이나 ‘추석에 추억 한 컷’, 수확한 벼를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직접 찧어보는 ‘옥토끼 방아 찧기’ 등입니다. 옛 시절을 회상하며 고향을 마음으로 품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강화에서는 교동도 대룡시장이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추억의 사진은 물론 추억의 꽈배기, 추억의 고무신, 추억의 다방 등 아스라한 옛 풍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풍물이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대룡시장을 찾고 있지만, 서울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그 시장의 존재를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더 얘기해보지요. 강화에는 특산품이 참 많습니다. 경쟁력이지요. 어릴 적에는 귀중함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새삼 이번 한가위에는 더 돋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산물로 주민 주머니 두둑해져야

강화인삼, 강화새우젓, 강화섬쌀, 강화순무, 강화사자발약쑥, 강화속노랑고구마, 강화섬포도, 강화갯벌장어는 소중한 강화의 경쟁력입니다. 거기다 왕골공예품, 화문석, 꽃삼합, 화방석, 강화소창을 더하면 강화는 매력적인 향토 특산물의 고장입니다. 이런 특산물이 좀 더 많이 알려지고, 좀 더 많이 팔려 강화 주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으면 합니다. 한가위 연휴에 강화를 찾는 이들이 지갑을 활짝 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심에서 간접 체험하는 고향을 강화에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매력입니다. 이번 한가위에도 강화로 들어오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할 겁니다. 그래도 고향 나들이는 즐겁습니다. 남녘 고향을 가지 못하는 분들은 강화로 마음을 달래러 오실 수 있습니다. 강화풍물시장과 강화 5일장, 농산물판매장, 인삼센터, 젓갈시장, 어판장을 더 효율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장터에 가면 어릴 적 생각도 나고 고향 향수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화 5일장은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열립니다. 

이번 한가위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옛 시절 명절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어도 서로 도닥이고, 이웃 간 정을 나누고, 그리운 이들을 만나고, 마음이 넉넉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치권만 정신 차리면 됩니다. 민심의 밥상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한가위가 변곡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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