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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한·중·일이 달리 쓰는 한자어

작성일 : 2022.08.10 14:01 수정일 : 2022.08.10 14:03

작성자 : 배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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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중국에서 ‘애인’은 배우자 이르는 말 
일본에서 ‘애인’은 불륜 상대를 지칭

한·중·일은 모두 한자어 문화권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한·중·일 세 나라가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자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세 나라가 모두 한자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국에서 모든 한자어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 단어의 용법에 차이가 생기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하게 쓰이는 한자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중국·일본에서 ‘애인’이라 부르면 큰일

일본이나 중국에서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상대에게 실례를 하거나 아주 곤란한 입장에 처할 수 있는 대표적 단어가 ‘애인(愛人)’이다. ‘愛人’은 ‘사랑 애(愛)’자에 ‘사람 인(人)’자로 구성돼 있어 ‘사랑하는 사람’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런 뜻으로 우리가 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의미로 쓰일 것이라 생각하고 마구 사용해선 안 된다. 지칭하는 대상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애인(愛人)’이 정식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를 가리킨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을 지칭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애인’이라고 했다가는 내 배우자란 이야기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우리말 애인에 해당하는 중국어는 ‘칭런(情人)’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조심해야 한다. 현대 일본어에서 ‘애인(愛人)’은 정식 혼인 관계 외의 불륜 상대를 뜻한다고 한다. 정부(情夫·情婦) 등 내연 관계의 이성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배우자가 있음에도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란 의미다. 좋아한다고 해서 ‘애인’이라고 했다가는 상대가 펄쩍 뛰게 될 것이다. 대만에서도 ‘애인’이 불륜 상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일본·중국에는 ‘팔방미인’이 없다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팔방미인’이라 부른다. 원래는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의미가 확대돼 여러 가지 좋은 점을 두루 갖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렇다면 일본·중국에도 이런 팔방미인이 있을까? 없다. 우리나라에만 팔방미인이 있다. 좀 썰렁한 개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팔방미인’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팔방미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에서는 ‘팔방미인’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팔방미인’이 누구에게나 좋게 보이려고 싹싹하게 대하는 사람, 즉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가볍게 처신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이르는 말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에게 팔방미인이라 했다가는 큰 실례가 된다. 중국에서는 ‘팔방미인’이라고 하면 그냥 팔방에서 온 미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중국에서 ‘애정’이란 말 잘못 쓰면 변태

‘애정’처럼 따뜻한 말이 있을까. ‘애정(愛情)’은 글자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세상은 온통 따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을 것이다. ‘애정’의 대상은 이성일 수도 있고, 부모·형제 등 가족일 수도 있다. 동료일 수도 있고, 기타 사회 구성원이나 인간 모두일 수도 있다. 또 자신의 일일 수도 있고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애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다르다. 중국에서 ‘애정(愛情)’이란 말은 남녀 간 사랑에만 쓰인다. 따라서 우리처럼 “내가 꾸려가는 가게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든가 “요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돋보인다” 등의 말은 중국에선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식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부모에게는 어느 아들 못지않게 잘나 보이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한한 애정 때문이다”는 말 역시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애정(愛情)’이란 한자어가 원래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일본에서 모두 대상을 불문하고 두루 쓰였지만 오늘날 중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이성에 국한해 사용되고 있다. 만약 중국에서 “나는 내 여동생에게 애정을 느낀다”거나 “나는 어머니께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말하면 참으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게 될 것이다. 변태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 ‘애정’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중국에서 ‘요정’은 심한 욕이자 악담

피겨 스케이팅으로 세계를 제패한 김연아 선수에게 항상 따라붙는 말은 ‘요정’이었다. 그가 은반 위에서 펼치는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보면 ‘피겨 요정’이나 ‘국민 요정’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요정(妖精)’은 일반적으로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숲 속의 요정” “그녀는 요정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등처럼 사용된다. ‘요정’은 여자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라 해도 ‘요정’이라 부르면 안 된다. 중국어 ‘야오징(妖精)’은 주로 요사스러운 여자, 요부, 음탕한 여자, 요망한 여우 같은 년 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주 심한 욕이자 악담이라고 한다. 만약 중국에서 국민적으로 추앙받는 여자 선수나 배우 등에게 나름대로 찬사를 보낸다고 해서 ‘요정’이라 불렀다가는 큰일이 나고 만다.

일본에서는 괜찮다. 일본어로 ‘요정(妖精)’은 ‘요세(ようせい)’ 또는 영어의 일본식 발음인 ‘훼아리(fairy)’라 부르며 ‘선녀, 요정, 요정 같이 우아한, 상상속의’ 등 쓰임이 우리말과 비슷하다.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 따라서 한·일 양국에서는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여자를 ‘요정’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요정’이야말로 여자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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