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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의병 열전] 9. 강창호·고부성·고재환·고호섭 의병

작성일 : 2022.08.01 14:23 수정일 : 2022.08.10 13:51

작성자 : 조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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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화에서 의병 활동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순국하거나 투옥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료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강화 의병들의 공적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잠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지난해 11월 4일 인천대학교(이사장 최용규)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화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신청’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강화군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침략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30명을 추가 발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강화군은 현재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 및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강화 의병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호부터는 강화군에서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먼저 강창호·고부성·고재환·고호섭 의병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강창호 의병

본적 : 미상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생년월일 : 미상

강창호(姜昌浩) 의병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1908년 음력 정월 20일부터 38명으로 구성된 의진(의병장 불명)에 참여하여 각처에서 군수금품을 모집하는 의병으로 활동해 왔는데, 1908년 8월 8일 자택에 왔다 강화 순사주재소 일본인 순사 외 2명에게 피체되어 인천경찰서로 인치되었으나 판결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경성지방재판소 인천지부 판결문은 여느 의병장·의병처럼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부성 의병

본적 : 미상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국화동(菊花洞)
생년 : 1885

고부성(高夫成) 의병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1908년 3월 지홍윤(池弘允)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지홍윤 의진은 그해 음력 6월까지 황해도 배천·평산·해주 등지와 경기도 강화군 내가면·북사면, 교동군에서 의병투쟁을 벌였다. 그해 음력 7월부터 음력 10월까지 지홍윤 의진은 김수민(金秀敏). 연기우(延起羽), 윤인순(尹仁順/淳), 이은찬(李殷瓚), 황재호(黃在浩) 등의 의진과 연계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는데, 고부성 의병도 이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지홍윤 의병장의 부상으로 일시 의진을 중대장 박계석(朴啓石)이 이끌었는데, 1908년 11월 12일 인천경찰서 변장 순사대에 피체, 모진 고문을 당한 후 11월 16일 박계석과 함께 탈출을 기도하다 피살 순국하였다.

 

고재환 의병

본적 : 미상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생년월일 : 미상

고재환(高在煥) 의병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킨 지홍윤(池弘允), 박계석(朴啓石)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1908년 음력 7월 대한제국 기병대 부교(副校) 출신 김용기(金龍基, 일명 金鳳基) 의병장이 강화도에 진출하여 지홍윤·박계석을 의진의 중대장으로 삼아 의병투쟁을 전개할 때 김용기 의진의 금찰장(禁察長)으로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에서 일본 군경은 물론 일제 밀정과 고총(古塚)을 도굴하던 일본인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부교(副校) : 조선 후기의 육군 하사관. 갑오개혁의 군제(軍制) 개편에 따라 두었다. 정교(正校)의 아래, 참교(參校)의 위이며 지금의 중사(中士)급이다. 당시 급료는 정교는 10원(元), 부교는 9원, 참교는 8원, 병졸은 5원 10전이었다. 1907년 군대 해산령으로 없어졌다.
*고총(古塚) : 오래된 무덤

 

고호섭 의병

본적 : 미상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생년월일 : 미상

고호섭(高浩燮)은 경기도 강화 출신의 의병이다. 1907년 8월 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킨 강화분견대 부교(副校) 출신 지홍윤(池弘允) 의병장은 전 육군 기병대 부교 출신의 김용기(金龍基, 일명 金鳳基) 의병장 의진과 협력하여 강화·교동·풍덕·개성 지역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강화도, 석모도, 주문도 등 강화도 인근 10여 개 도서지방에서 7~8척의 배를 이용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하자 일본군은 군함 ‘치하야칸[千早艦]’을 비롯하여 수뢰정 3척에 육전대(陸戰隊)와 순사대를 동원하여 의병 진압에 나섰는데, 고호섭은 1908년 9월 7일, 장동섭(張東燮)과 함께 의병활동을 한 혐의로 강화도에서 피체되었다.<재판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육전대(陸戰隊) : 해군(海軍)에 소속되어 작전을 돕고, 필요시에 육전(陸戰)에 종사하는 군대. 오늘날의 해병대다.

 

조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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