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7.19 16:48
작성자 : 배상복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14개국이 10개씩 제출한 이름 번갈아 사용
가장 센 바람의 순우리말 이름은 ‘싹쓸바람’
기상청은 최근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에서 ‘개나리’가 새 태풍명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태풍은 그동안 쭉 있어 왔고, 각각의 이름이 있었을 텐데 왜 갑자기 새로운 이름으로 ‘개나리’가 선정됐을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제출해 사용되고 있던 ‘고니’라는 태풍이 2020년 10월 필리핀에 막대한 해를 끼쳐 퇴출당한 때문이다. 당시 태풍 ‘고니’는 최대풍속이 초속 54m가 넘는 등 매우 강력했고 필리핀을 관통하면서 400여 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피해를 냈다.
기상청이 대국민 공모를 통해 ‘개나리’를 다시 제출했고 이것이 WMO에서 받아들여진 결과다. 태풍 이름은 아시아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이 10개씩 제출한 이름이 돌아가며 붙는데 어떤 태풍이 큰 피해를 일으키면 그 태풍 이름은 퇴출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태풍(颱風)이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해 아시아 대륙 동부로 불어오는 열대 저기압을 말한다. 풍속은 초속 17.2m 이상으로 중심에서 수십㎞ 떨어진 곳이 가장 빠르고, 중심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열대 저기압은 발생 장소에 따라 태풍(Typhoon·북태평양 남서부), 허리케인(Hurricane·대서양 서부와 북태평양 동부), 사이클론(Cyclone·벵골만과 아라비아해) 등으로 이름을 달리한다.
큰 피해를 주면 태풍 이름도 퇴출
호주 예보관들이 처음으로 태풍의 이름을 지었는데, 당시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붙여 화풀이를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으며, 이때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 이름을 사용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1978년까지는 태풍 이름이 여성이었다가 이후부터는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북태평양에서의 태풍은 1999년까지 괌에 위치한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아시아태풍위원회가 아시아 각국 국민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서양식 이름에서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변경, 사용하고 있다.
각 국가에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가 각 조 28개씩 5개 조로 구성되고,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개미·나리·장미·수달·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나비 등 10개를 제출했고, 북한은 기러기·도라지·갈매기·매미·메아리·소나무·버들·봉선화·민들레·날개를 제출했다. 전체 140개 이름 중 우리말 태풍이 20개인 셈이다. 이 가운데 ‘고니’가 이번에 ‘개나리’로 대체된 것이다.
이처럼 태풍이 극심한 피해를 끼친 경우 앞으로 비슷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해당하는 태풍의 이름은 폐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게 된다. 피해를 주지 않은 태풍일지라도 다른 중대한 사유가 있으면 이름을 변경하기도 한다. 2005년 9월 일본 규슈 지방에 상륙한 태풍 ‘나비’는 20여 명의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해를 일으켜 일본이 이름 변경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나비’는 ‘독수리’로 바뀌었다. 이렇게 한번 퇴출된 이름은 다시는 태풍 이름으로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2003년 발생한 태풍 ‘수달’은 미크로네시아의 요청으로 ‘미리내’로 바뀌었다. 2003년 우리나라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매미’는 ‘무지개’로 변경됐다. 하지만 ‘무지개’ 역시 2015년 홍콩에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수리개’로 다시 교체됐다.
순우리말 이름 ‘싹쓸바람’ 사용 늘려야
태풍은 바람의 정도에 따라 다시 자세히 분류된다. 영국의 제독 프랜시스 보퍼트(1774~1857)가 바람의 세기를 0~12까지 13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이를 보퍼트 등급이라 부른다. 원래는 해상용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기상 통보 등에 널리 쓰인다. 우리나라도 기상청에서 이 등급표에 맞춰 대부분 순수한 우리말로 바람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지금은 기상청마저 쓰지 않는 말이 됐으나 ‘고요<실바람<남실바람<산들바람<건들바람<흔들바람<된바람<센바람<큰바람<큰센바람<노대바람<왕바람<싹쓸바람’이 그것이다. 큰바람(초속 17.2~20.7m)부터 태풍에 속하며, ‘싹쓸바람’은 초속 32.7m 이상으로 육지의 모든 것을 쓸어갈 정도의 태풍이다. 필리핀에 피해를 준 태풍 ‘고니’가 초속 54m 이상이었다고 하니 ‘싹쓸바람’의 기준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바람이었던 셈이다.
태풍 가운데서도 가장 센 것의 우리식 이름인 ‘싹쓸바람’은 직관적이어서 듣기만 해도 오싹함이 느껴진다. 태풍이나 강풍은 단순히 바람이 강하다는 개념만 있지만 ‘싹쓸바람’은 그 바람의 결과 육지의 모든 것이 쓸려 갈 수도 있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순우리말이다.
올해는 아직 우리나라에 큰 태풍이 오지 않았지만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로 ‘싹쓸바람’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고 언제 닥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웃 섬나라 일본이 우리보다 자주 이 같은 싹쓸바람을 접하지만 피해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재난 대비 체계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대비만 잘하면 막을 수 있는 것을 앉아서 당하는 인재(人災)는 없어야겠다. 무엇보다 태풍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강력한 태풍의 경우 ‘싹쓸바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경각심을 높인다면 대비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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