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7.05 14:14 수정일 : 2022.07.05 14:18
작성자 : 배상복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음식과 관련해 궁금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총각김치’다. 왜 하필이면 음식에 ‘총각’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하다. ‘총각김치’가 있으면 ‘처녀김치’도 있을 법한데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무엇에 실패할 때 ‘미역국을 먹었다’고 하는데 왜 이 말을 쓰게 됐는지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닭도리탕’의 어원은 무엇일까? ‘닭’은 알겠는데 왜 ‘도리’가 붙었는지도 궁금하다.
‘총각김치’의 ‘총각’은 무의 생김새에서 온 말
K-컬처의 영향을 타고 요즘 해외에서 김치가 인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가 생각나지만 이 외에도 김치의 종류는 많다. 무김치·파김치·물김치·열무김치·오이김치 등 다양하다. 총각김치도 있다. 손가락 굵기만 한 어린 무를 잎과 줄기째 양념에 버무려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다. 총각김치에 왜 하필이면 ‘총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총각김치가 있으면 ‘처녀김치’도 있을 법한데 왜 처녀김치는 없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것을 ‘총각(總角)’이라 했으며, 이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 불렀다고 한다. 총(總)은 ‘모두’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과거엔 ‘꿰맬 총’ ‘상투 짤 총’으로도 사용됐다. 각(角)은 물론 뿔을 뜻한다. 한 줌 크기로 모아 잡아맨 미역을 ‘꼭지미역’ 또는 ‘총각미역’이라 하는 걸 보면 ‘총각’이 동여맨 것을 지칭하는 건 분명하다.
따라서 어린 무가 ‘총각’이라는 머리 모양을 닮아 ‘총각무’가 됐고, 그것으로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라는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어린 무의 모양이 남성의 그것을 닮았다는 점에서 위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남성의 그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옛 여인들이 총각김치를 담그면서 그런 잡담을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또 여자들이 김치를 담그기 때문에 ‘총각김치’만 있고 ‘처녀김치’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은 자유다.
참고로 총각김치를 담글 때 쓰이는 어린 무를 ‘총각(總角)무’ 또는 ‘알무’ ‘알타리무’라 하는데, 1988년 개정된 표준어 규정은 순수 우리말인 ‘알무’ ‘알타리무’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해서 한자어 계열인 ‘총각무’로 쓰도록 했다. 따라서 ‘총각무’ ‘총각김치’가 표준어이고, ‘알무’ ‘알타리무’ ‘알타리김치’는 표준어가 아니다. 순우리말을 버리고 한자어를 표준어로 선정함으로써 비판이 있는 부분이다.
‘미역국을 먹었다’는 구한말 군대 ‘해산’과 관련된 말
시험에 떨어지거나 경쟁에서 탈락하는 경우 ‘미역국을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럴 때 왜 미역국을 먹었다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미역국을 먹었다’는 표현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구한말 고종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1907년 고종을 폐위시키고 우리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다. 군대가 해산함으로써 나라는 더욱 위기에 처하고 일자리를 잃은 군인들은 매우 곤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사용된 것은 다소 엉뚱하지만 군대의 ‘해산(解散)’과 아이를 낳을 때 ‘해산(解産)’이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에 산모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음을 간파한 조상들의 지혜 덕분이다. 이처럼 여자들이 해산할 때 미역국을 먹기 때문에 이에 빗대 군대가 해산한 것을 두고도 미역국을 먹었다는 표현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미역이 미끄럽기 때문에 시험에서 미끄러졌다는 의미로 ‘미역국을 먹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의미적 연관성으로 볼 때 이 역시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군대의 해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군대의 해산에서 생겨난 말이지만 미역의 미끄럽다는 의미가 연관돼 아직까지 널리 쓰이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닭도리탕’에서 ‘도리’는 새를 뜻하는 일본말
닭고기 요리는 삼계탕·백숙·튀김·구이·볶음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닭도리탕’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닭과 함께 졸아든 양념의 얼큰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젊은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맛이 더욱 개발된 덕분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식사로도 괜찮지만 얼큰한 맛 때문에 술안주로도 잘 어울리는 요리다. 합리적인 가격에 술안주 겸 식사로 삼기에 아주 제격이다.
‘닭도리탕’을 먹으면서 ‘도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도리’는 순우리말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도리(鳥·とり)’는 새 또는 닭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이면 즐겨 하는 화투 놀이 ‘고스톱(go-stop)’의 약(約) 중에 ‘고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도리’가 들어간 일본말이다. 화투짝 매조(한 마리)·흑싸리(한 마리)·공산(세 마리) 석 장에 모두 다섯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일본어로 ‘고도리(五鳥·ことり)’라 부른다.
‘도리’는 우리말의 ‘닭’(아래아)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없는 일본어에서 ‘닭(아래아)>다(아래아)리>도리’의 변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우리말과 일본어 ‘도리’가 결합한 ‘닭도리탕’은 ‘닭+닭(도리)+탕(湯)’이 되는 셈이어서 의미상으로도 겹말이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우리말 순화용어는 ‘닭볶음탕’이다. ‘볶음’과 ‘탕’이 결합한 ‘볶음탕’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또 ‘볶음탕’이라는 것이 다른 음식에는 없는 말이어서 ‘닭볶음탕’이 다소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즘 식당에 가면 ‘닭볶음탕’이라 적어 놓은 곳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가급적 우리말을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말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어색해도 자꾸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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