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28 15:19 수정일 : 2022.06.28 15:25
작성자 : 양영유

<양영유 前 중앙일보 논설위원 /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1절)/비로봉 그 봉우리 예대로 있나/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발 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우리 다 맺힌 슬픔 풀릴 때까지(2절)/(후렴)수수만년 아름다운 산/못 가본 지 그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온 국민이 좋아하는 명곡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리운 금강산’을 만든 분은 강화 태생이다. 작사가인 한상억 시인(1915~1992)은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작곡가인 최영섭(1929~) 선생은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가 고향이다. 양도면과 화도면은 서로 살결을 맞대고 사는 정겨운 이웃이다. 두 마을 출신이 대한민국의 최고 국민 가곡이자,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보 도밍고도 반한 ‘그리운 금강산’을 만든 것이다.
작사 한상억 도장리, 작곡 최영섭 사기리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강화군민들이 많지 않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그런 사실을 알고 교육을 했더라면, 학생들의 강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무관심이 아쉽다. 강화군청도 마찬가지다.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를 수만 번 외쳤을 터인데 한상억·최영섭 두 분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운 금강산, 강화 분들이 만들었시다~.” 이 한 마디만큼 강력한 말이 어디 있겠나. 강화군청의 노력이 부족했다.
강화군 어디에도 ‘그리운 금강산’의 흔적이 없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옅은 식견으론 그렇다. 그런데 인천에 노래비가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에 있는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다. 새얼문화재단이 2000년 8월 15일 인천시에 기증했다. 높이 6m, 너비 6.4m, 무게 60t의 오석(烏石)을 소재로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데 예전에 강화군은 행정구역상 인천이 아닌 경기도였으니 2000년까지 인천에서도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운 금강산’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한상억·최영섭 선생도 그동안 무척 서운했을 터다.
한상억은 은행원, 최영섭은 음악 교사 활동
한상억 시인은 호가 이록(二綠)이다. 양도면 길정리에서 태어나 1935년 인천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을 다녔다. 1946년 인천에서 ‘시와 산문’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6년 ‘자유문학’에 시 ‘평행선’ 등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한상억은 주로 생활 속 시상(詩想)의 세계를 넘나든 것 같다. 시 ‘강’과 ‘아침’은 향토의 향기가 물씬 난다. 한상억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경기도 지부장으로 활동했고 언론계에도 몸담아 경기매일신문의 논설위원도 역임했다. 그렇지만 도장리 사람들조차 한상억 시인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영섭 작곡자는 올해 94세다. 탱자나무로 유명한 사기리에서 1929년에서 태어났으니 모든 풍진 세월을 고스란히 겪은 분이다. 최영섭 선생은 일찍이 뭍으로 나갔다. 인천 창영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 서울 경복고를 다녔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인천여중과 인천여고 음악 교사를 지내면서 인천시합창단과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인천 중구 내리교회 성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대학원 석사(지휘과정)를 마쳤고, 1960대 초 동아방송 개국 때부터 음악 방송도 진행한 이력이 있다.
1961년 그리운 금강산 탄생
강화 태생인 한상억·최영섭 두 분이 대한민국 최고의 불후의 명곡으로 불리는 ‘그리운 금강산’을 만든 건 1961년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1962년 처음 공연무대에 오른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 11곡 중에 포함된 곡이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만들 당시 상고 출신 한상억은 은행원이었고 최영섭은 음악 교사였다. 14살 차이인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사이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역사 또한 강화군에서 발굴해야 할 숙제다. 아무튼 ‘그리운 금강산’은 한국 전쟁 11주년을 기념해 조국 강산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한상억의 가사는 금강산의 절경과 분단으로 인해 가지 못한 심경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필자는 1990년대 말 금강산에 두 번 가본 적이 있다. 노래로만 상상했던 금강산의 절경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경이었다. 암석 곳곳에 새긴 ‘위대하신 ◯◯◯ 수령님~~’같은 붉은 글씨는 금강산의 절경을 죽이는 독약 같았다. 가곡 ‘아름다운 금강산’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2년 남북적십자 회담을 계기로 전국적인 애창곡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 인해 가사 내용이 일부 수정됐다. ‘더럽힌 지 몇 해’가 ‘못 가본 지 몇 해’로, ‘우리 다 맺힌 원한’이 ‘우리 다 맺힌 슬픔’으로, ‘짓밟힌 자리’가 ‘예대로인가’로 바뀐 사연이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와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보 도밍고가 금강산을 불렀다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것만은 아니다. 강화 출생인 두 분을 기릴 기념관을 강화에 만들어 국민에게 알리고 더 나가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 시급하다. 얼마 전 강화군청에서 인구소멸 대응 강화군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갔었는데 ‘그리운 금강산’ 같은 핵심 테마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더욱이 작곡가인 최영섭 선생은 고령이시라 자필 악보(1500여 권) 관리 방안도 필요하다고 한다. 강화군이 낳은 위대한 음악인들을 강화군이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 아닌가.
강화에 그리운 금강산 기념관 만들자
이참에 강화군의 역사와 문화, 관광 스토리텔링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으로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최영섭 기념관’을 강화에 건립하는 것이다. 우선은 강화군민 모금 운동으로 시작하고, 범국민 시민모금운동으로 확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게 중요하다. 그런 뜻이 알려지면 인천시와 중앙정부도 움직일 것이다.
위대한 고향 분들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그 예술적 혼과 자료를 군민과 국민과 공유한다면 강화의 문화적 가치와 예술적 우수성이 드높아질 것이다.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라는 역사의 고장을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강화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인물 스토리를 발굴해 널리 알리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한상억·최영섭 강화도령일시다~” “강화에 그리운 금강산 기념관이 있시다~ 보러 오시겨!” 이런 자신감과 자부심이 절실하다. 그 발화점은 강화지역 초·중·고 교육과 강화군 행정의 업그레이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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