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14 13:15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어린 시절, 강화에서는 영상문화를 접하기 어려웠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야 전기가 들어왔지만, 마을에는 텔레비전이 거의 없었다. 김일 레슬링 경기가 열릴 때면 초등학교 시청각실로 마을 사람들이 몰려갔다. 흑백 텔레비전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김일의 박치기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 꼬마였던 필자는 “마을 공동체, 마을 소통, 이웃의 정이 이런 거구나”하며 다정다감하고 소박하게 더불어 사는 현장을 체험했다. 레슬링을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20여 분은 말 그대로 ‘이야기 길’이었다.
학교 시청각실서 김일 레슬링 보기도
때로는 초등학교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널찍한 운동장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슨 영화인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화면 속의 배우는 멋졌고 영상문화에 대한 허기도 달랠 수 있었다. 영화를 볼 때는 학교 친구들은 물론 동네 분들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거의 없어 영상을 접할 기회가 없던 시절이니 학교의 영화 무료 상영은 인기가 많았다. 라디오의 어린이용 ‘손오공’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라디오의 ‘법창야화’를 들으며 온몸이 오싹하던 시절에 직접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강화읍에 있던 극장에 갔다. 난생 처음 가보는 영화관이었다. 돈을 내고 들어가야 했기에 까까머리 학생들은 평소에 조금씩 돈을 모았다. 입장 요금이 모자라는 친구에게는 50원도 보태고, 30원도 보탰다. 입장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자장면을 곱빼기로 실컷 사먹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러니 영화관 관람은 일종의 사치일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배고픔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장면보다 더 심했다. 그런 배고픔은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는 영상의 역동성과 사운드의 매력은 청춘의 고동을 뒤흔들었다.
자장면 보다 더 좋았던 강화영화관
고교생 때 인천에서 영화관을 여러 번 갔었다. 영화관 간판은 화려했다. 여성 영화배우의 화려한 모습은 교복 입은 청춘들을 흔들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기를 쓰고 들어가 보던 시절이었다. 학교 선생님도 단속을 나오곤 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고2 때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각했다. 인천지역도 당시에는 외곽에 논이 많았다. 한참 모내기철이던 5월 중순, 고교생들에게도 ‘모내기 봉사’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교련복을 입고 모내기 지원을 나갔다. 필자는 강화 출신이라 모내기에 익숙했지만, 인천 출신 친구들은 모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앙기가 없던 시절, 무조건 모내기 봉사를 하라고 하니 한편으론 신이 났다. 수업 안 하고 땡땡이치는 기분이니 말이다. 친구들과 오전에 모내기를 하고, 오후에 모두 극장으로 달려갔다. 인천 시내 극장에 가보니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았다. 극장 안은 교련복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런 상황을 예측했는지 선생님도 극장에 오셨다. 혹여, 학생들 간 시비가 붙을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셨던 게다. 그럴 정도로 당시 영화관은 흥행을 이어갔다. 대학생 시절에도 가끔 영화관을 찾곤 했다. 그렇게 청춘 시절이 지나갔다.
작은영화관 재개관, 문화 갈증에 단비
그러는 사이 강화읍 내에 있던 영화관은 문을 닫았다. 농산어촌 지역에 영화관은 정말 경영이 어려웠을 터이다. 대학생 시절, 방학 중 강화 집에 머물며 영화관을 가고 싶어도 강화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강화에서 영상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강화문화원에서 무료영화를 상영하곤 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부모님하고 극장엘 한 번도 같이 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옛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최근 희소식을 접했다. 강화군이 ‘강화 작은영화관’을 재개관했다는 소식이었다. 강화공설운동장 옆 강화문예회관에 있던 영화관의 재탄생이다. 강화군이 낡은 영상 장비를 교체하고 편의시설을 보강해 6월 8일 재개관했다. ‘작은영화관’은 소규모다. 스크린 1개, 좌석 87석으로 아담하다. 작은영화관은 코로나19 전까지는 강화군의 문화중심 공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이후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다시 영화관을 연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하루 4회 상영한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영화관 홈페이지(https://ganghwa.scinema.kr/)를 보니 관람요금이 2D 영화는 6,000원, 3D 영화는 8,000원으로 도심 요금보다(보통 1만2,000원)보다 저렴하다. 재개관 기념 첫 상영영화는 ‘쥬라기월드: 도미니언’과 ‘브로커’다. 영화 ‘브로커’는 윤석열 대통령도 관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이참에 관람을 해볼까 한다.
영화관 어르신 이용 활성화 방안 절실
작은영화관의 상영 작품과 관람 예약은 홈페이지로 할 수 있고, 단체 관람은 일주일 전에 예약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영화관이 젊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화군의 문화 향유는 세대와 연령, 거주지에 상관없이 모든 군민이 편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관이 강화터미널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다, 교통편 또한 여의치 않다. 그러니 노인인구가 35%나 되는 강화군의 인구구조 상 어르신들은 사실상 이용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작은영화관이 휴관 기간 동안 리모델링을 통해 새단장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연령대와 거주지역별 문화 격차 해소 방안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문 건 다소 아쉽다. 작은영화관이 강화읍 내 주민들과 젊은 층만 주요 이용객이 된다면 강화군민들의 문화공간이자 편안한 휴식처라는 군의 목표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할 수가 있다. 1970년, 80년대의 문화적 허기가 2022년에도 계속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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