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9.30 18:30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망나니’ ‘도무지’는 끔찍한 형벌과 관련된 낱말
‘염병하네’ ‘지랄하네’는 질병과 관련이 있는 말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가운데는 그 속에 아픈 역사나 끔찍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망나니’와 ‘도무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진 형벌과 관련이 있다. ‘염병하네’ ‘지랄하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사람의 질병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어원을 알면 차마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망나니’는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
TV에서 사극(史劇)을 보면 간혹 사형 장면이 나온다. 사형수가 포박된 채 꿇어앉아 머리를 떨구고 있고 머리를 풀어헤친 사내가 그 주위를 맴돌며 칼춤을 춘다.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다리를 들썩이며 한바탕 춤을 춘다. 가끔 입에 물었던 물을(술인 것 같기도 하고) 긴 칼에 뿜어댄다. 얼굴 모습은 마치 짐승과 같고 눈에는 살기가 번뜩인다. 사형수는 겁에 질려 혼이 빠진다. 이윽고 사내는 사형수의 목을 단칼에 내리친다. 참으로 끔찍한 장면이다.
이렇게 사형수의 목을 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앗는 것이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질고 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중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가 이런 일을 했다고 한다. 큰 죄를 지어 사형에 처해야 할 죄인을 뽑아 특별히 살려 두고 다른 죄인의 목을 치는 일을 시켰다.
이처럼 사형수의 목을 치는 끔찍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 불렀다고 한다. 망나니는 원래 ‘막난이’가 변한 말이라고 한다. ‘막난이’에서 ‘막’은 ‘마구’ 또는 ‘함부로’를 뜻하는 말이다. ‘막난’은 ‘함부로 된’ ‘막된’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존명사다. 따라서 ‘막난이’는 ‘함부로 된 사람’ ‘막된 사람’을 뜻한다. 사형수의 목을 치는 모진 일을 하는 사람은 막된 사람, 즉 막난이임에 틀림없다. 이 ‘막난이’가 변화해 ‘망나니’가 됐다. 발음의 편리성을 따라 ‘망나니’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망나니 역시 중죄를 지은 흉악범이므로 본성이 포악하고 행동이 거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속성이 일반인들에게도 확대 적용돼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로 ‘막나니’가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망나니 가운데서도 심한 망나니, 즉 예절에 몹시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성질이 아주 못된 사람을 ‘개망나니’라 불렀다. 성질이나 하는 짓이 지독하게 못돼 고약한 사람을 ‘불망나니’라 부르기도 한다.
망나니는 이처럼 원래가 중죄를 지은 흉악범이고 또 사형수의 목을 치는 포악하고 끔찍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일상생활에서 좀 거칠거나 난폭한 사람이 있으면 “에이 저 망나니” “에이 망나니 새끼” 하는 식으로 상대가 들리지 않게 욕을 하곤 한다. 심한 경우 면전에서 “야, 이 개망나니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심한 욕이다. 망나니의 어원을 안다면 차마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도무지’는 몹시도 끔찍한 형벌
일상에서 ‘도무지’라는 말을 많이 쓴다. “도무지 속셈을 모르겠다”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처럼 사용된다. 여기에서 ‘도무지’는 ‘아무리 해도’라는 뜻이다. “도무지 예의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도무지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때는 ‘도무지’가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이 ‘도무지’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도무지’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역어보》에 ‘도모지’가 출현하며 이 형태는 20세기까지도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도무지’의 옛 어형은 ‘도모지’이며 ‘도모지’가 ‘도무지’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무지’는 옛 형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이 도모지(塗貌紙)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이다. 죄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은 뒤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 놓는다. 그러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해 죽게 되는 끔찍한 형벌이다. ‘도무지’는 이런 끔찍한 형벌에서 비롯돼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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