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9.30 18:30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속도를 중요시하다 보니 ‘잇으시면’ ‘맛잇게’ 등으로 표기
통신언어 벗어나선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인터넷에서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또는 ‘눈치 없는 男에 답답한 女’)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휴대전화 앱인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캡처한 것인데 눈치 없이 계속 질문을 보내는 남자와 답답해하는 여자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밤늦게 남자는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잇따라 문자를 보내지만 여자는 그때마다 관심이 없는 듯 ‘넴’이라는 짧은 말로 대답한다. 마침내 남자가 “넴밖에 안 하고 졸려요?”라고 묻자 역시 “넴”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음날 저녁 남자는 다시 “뭐해여?”로 시작해 계속 문자를 날리지만 여자는 또 “넴” 아니면 “아녀”란 짧은 답만 한다. 결국 이 남자가 “맨날 넴만. 솔직히 그렇게 시르세요?”라고 묻자 여자는 “불편해염”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곤 “알겟어요”라는 남자의 말에 다시 “넴”이라는 답이 돌아오면서 폭소가 터지게 한다.
대화 내용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것과 함께 다시금 통신언어로서 한글의 우수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말은 “술생각 잇으시면 술드시러오실래요” “자다가 배고프셧나바여” “짜파게티 맛잇게먹어여” “알겟어요” 등처럼 철자를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거나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큰 문제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글은 각각의 철자마다 고유한 음이 있기 때문에 붙여 써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또한 “넴” “아녀” “ㅋㅋ” 등과 같이 축약형으로 표현하거나 발음되는 형태대로 비슷하게 표기해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만큼 한글이 속도와 정확성에서 다른 언어를 압도한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속도를 중시하는 문자메시지나 기타 인터넷상의 통신언어에서 간결하게 표현하다 보니 특히 축약형 받침을 쓴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ㅆ’ ‘ㄲ’ 받침을 ‘ㅅ’ ‘ㄱ’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잇어요’ ‘갓다왓어요’ ‘그랫어요’ ‘배웟는데’ ‘꺽엇다’ ‘낙엿어’ ‘석여 잇네’ ‘안팍’ 등이 이런 예다. 자판을 한 번 더 눌러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이런 습성이 들다 보니 통신언어를 벗어나 이제는 일반 글에서도 ‘ㅆ’ ‘ㄲ’ 받침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에서도 ‘잇으시면’ ‘배고프셧나바여’ ‘맛잇게’ ‘알겟어요’ 등의 표현이 나온다. 각각 ‘있’ ‘셨’ ‘있’ ‘겠’을 써야 할 자리에 쌍시옷 대신 시옷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자가 유통되다 보니 아예 이것이 맞는 표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공식적인 글에서 이러한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쌍시옷 대신 시옷으로 표기하는 것도 양반
‘머거써’처럼 아예 받침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도
그러나 최근에는 이렇게 쌍시옷을 시옷으로 적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예 받침을 쓰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머거써’가 대표적이다. 한국식 인사법으로 가장 많이 오가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밥 먹었어”이다 보니 특히 가족 간에 문자메시지로 이러한 내용이 오가기 일쑤다. 나 역시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밥 먹었냐?”는 식으로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머거써” 아니면 “안 머거써”다. 그러고 또 무엇을 물어보면 “어떠케 아라쩌”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아라써” 대신 “아라쩌”라고 할 때는 기분은 괜찮다는 느낌이 전해 온다. 어쨌거나 문제는 대답에 받침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받침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은 ‘추카추카’에서 시작해 머거써, 아라써, 어떠케, 그러케(←그렇게), 마너(←많어)뿐 아니라 시러(←싫어), 조아(←좋아), 조타(←좋다), 마니(←많이), 부지러니(←부지런히), 일거써(←읽었어), 아라요(←알아요), 가타요(←같아요)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문자메시지에서 유통되는 이러한 축약형 글자는 우리말을 파괴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말의 우수함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둬도 되는 것일까? 축약형 글자의 유통 문제는 어느 언어에서나 논란거리다. 영국의 언어학자인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문자메시지는 언어의 재앙일까 진보일까’라는 저서에서 문자메시지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되기보다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문자메시지에 사용되는 특이한 철자법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문자메시지는 ‘나쁜 것’ 인쇄 메일 스크랩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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