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9.30 18:30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일제가 ‘설’ 격하하기 위해 ‘구정’이라 칭해
우리 전통 이름인 ‘설’ 또는 ‘설날’이 바른말
코로나19에도 가족끼리 따스한 정 나누어야
‘구정’과 ‘설’의 차이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설은 추석·한식·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세시풍속 대부분이 설과 정월 대보름 사이에 집중될 정도로 설은 ‘민족의 잔치’로 자리하고 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날에 설을 지내 왔으며, 구한말 양력이 들어온 이후에도 여전히 이날 설을 쇠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이듬해 양력 1월 1일을 설로 지정하긴 했으나 이때도 ‘오랑캐의 명절’이라는 관념 때문에 양력설을 쇠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일병합(1910년)으로 ‘설’이라는 이름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일본 식민통치가 본격화하면서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만 쇠라고 강요했다. 특히 우리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 설인 ‘신정’(양력 1월 1일)을 쇠라고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新正)’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는 일본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일제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1주일 전부터 방앗간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일본 명절인 양력설을 쇠게 했다. 우리 국민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 부르면서 음력설을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고수했다. 당시 일제의 강압에 맞서 “양력설을 쇠면 친일매국, 음력설을 쇠면 반일애국”이란 구호를 외칠 만큼 설 명절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깊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음력설이 없다. 일찍부터 서양 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과거에는 음력으로 설을 지냈지만 이때부터는 설도 양력 1월 1일로 바꿔 보냈다. 일본에서는 음력 개념이 없어져 지금도 양력설만 지내고 있으며, 칠월칠석마저 양력 7월 7일에 쇤다고 한다.
일제에서 벗어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거나 함께 지내는 등 곡절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 때까지는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1985년 5공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1989년에야 정부는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사흘간 휴무를 주는 대신 양력설에는 하루 휴무를 정했다. 이렇게 해서 설은 제자리를 잡게 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원래 ‘신정’ ‘구정’이란 개념이 없었다. ‘신정’ ‘구정’은 일본식 한자어다. 이들 이름은 일제가 설을 쇠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신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을 ‘구정’이라 격하한 데서 연유했다. 따라서 가급적 ‘설’ 또는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지 않는 게 좋다. ‘양력설’ ‘음력설’이라는 명칭도 마찬가지다. ‘설’은 원래 음력 1월 1일에만 존재하는 우리 전통 명절이다.
설날 세시풍속
과거에는 섣달 그믐날(음력 12월 30일)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해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나 역시 어릴 때 시골에서 자지 않고 놀던 기억이 난다. 자정이 지나면, 즉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이 되면 미리 만들어 놓은 복조리를 서로에게 팔기도 했다. 복조리를 사서 안방·부엌·마루 등에 높이 달아 두면 한 해 동안 복을 많이 받는다고 믿었다.
설날 아침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과 떡국으로 차례(茶禮)를 지낸다. 차례를 지낸 다음에는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웃어른부터 순서대로 절을 하고 새해 첫 인사를 드린다. 절을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등 인사를 올린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새해에는 원하는 곳에 꼭 들어가라”는 등 덕담을 한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건네는데 그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아이들의 마음에는 ‘설=세뱃돈’이 아닐까 싶다.
세배가 끝나면 떡국을 먹는다. 설날에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맑은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