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8.23 11:56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치의 계절, 여기저기서 권력투쟁(Power Struggle)이 벌어진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 진보냐 보수냐, 누가 실세냐, 누가 자리사냥꾼이냐는 문제는 정치 세계만의 일은 아니다.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세계 어느 곳에서든 벌어진다. 기업체에서도, 공무원 세계에서도, 군인 세계에서도 더 나은 지위,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벌어진다. 인간의 본성이다. 사내 정치(Organizational Politics)가 횡횡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는 흥미진진하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이 쓴 책인데 요즘 시류(時流)에 다시 꺼내봄직하다. 누가 정치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했던가? 동물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본능만 좇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을 침팬지 집단의 권력투쟁 관찰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침팬지 세계에서도 고도의 정치 기법이 작동하고, 그들만의 관계와 서열이 그물처럼 엮인다. 그런 정치적 기제가 동물의 세계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기원보다 오래되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침팬지 세계에도 고도의 권력투쟁 작동
침팬지 집단의 일인자로 군림하다가 젊은 수컷에게 권력을 빼앗긴 노장 이에룬(Yeroen), 권력 싸움의 긴장이 고조되면 침팬지들이 몰려와 의지하는 여장부 마마(Mama), 사교적이며 쾌활하고 신뢰감 주는 행동으로 세대교체를 이뤄낸 라윗(Luit) 등은 인간들의 권력 세계와 흡사하다. 집권자를 넘어뜨리려 서로 손 잡고, 마침내 세력 교체에 성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아침에 적수가 된다. 연합을 했다가 배신당하자 옛 우두머리를 다시 찾아가 연합하면서 친분을 과시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새 집권자는 둘을 이간질하고….
침팬지 세계의 권력투쟁이나, 옛 왕조시대의 왕위 쟁탈전이나, 대선 정국의 권력다툼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야합, 충돌, 화해, 부추김, 권력 나누기가 이어진다. 프란스 드 발은 책 끝머리에 이렇게 말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드러내지 않음’과 ‘드러냄’ 그것뿐이다.” 즉, 인간은 권력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망을 은폐할 줄 알지만 침팬지는 그대로 노출할 뿐 본질적으로 권력을 좇는 속성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연합·배신·이간질…침팬지도 인간과 유사
인간의 정치 세계는 실로 복잡하다.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권력을 잡기 위한 계책이 교묘하고 다양하다. 권력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린다. 새로운 권력을 창출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자는 순수한 마음도 있고, 그저 떡고물이나 챙겨보려고 기웃거리는 흉심도 있다. 역대 대선 정국을 보더라도 그렇다. 지난 2017년 대선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에는 교수·전문가만 1,000명 넘게 몰려들었다. ‘매머드 싱크탱크’란 논란과 함께 ‘자리 사냥꾼’ 집합소라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곁에는 그 정도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정권을 잡기 위한 선거 전투장에서도 세(勢) 싸움이 벌어지지만, 정권을 잡고 난 후의 내부 권력투쟁은 더 심해진다.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권좌에 올랐을 때 어떠했나. 형제들 간은 물론 대신들 간에도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리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왕조시대를 소환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대선 역사도 그랬다. 2008년 이명박(MB) 정부 때를 보자. 친이(親李), 즉 친이명박계로 불리는 세력들이 충돌했다. MB의 형이 중심인 ‘이상득 그룹’, 정권의 2인자가 주축인 ‘이재오 그룹’, 소장파로 꾸려진 ‘정두언 그룹’이 치열한 3각 다툼을 벌였다. 선거 때는 겉으론 평화로운 척 위장을 했지만 욕망의 발톱이 드러나면서 세 집단은 인사권을 놓고 파열음을 냈다. 내홍은 심해졌고 마침내 MB 정부의 지지기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지는 빌미가 되었다.
대선의 세계, 미래 헤게모니 놓고 불협화음
그런 게 권력의 세계라지만 그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캠프나 국민의힘 윤석열 캠프도 매한가지다. 미래 권력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은밀한 다툼이 벌어진다. 헤게모니 싸움의 파열음은 윤석열 캠프에서 크게 울렸다. 당헌·당규에 기초한 지휘체계보다 붕당정치에 몰두하다 보니 친윤(親尹·친윤석열)계로 불리는 집단과 이를 견제하려는 집단 간 싸움이 도를 지나쳤다. 제1야당의 분열은 외양상으로는 봉합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윤석열 캠프 안팎의 ‘헤게모니 싸움’은 수면 아래서 계속될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권력투쟁은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이 차이점이라고 했지만 윤석열 캠프는 권력투쟁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이런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위원장, 이준석 당 대표, 윤석열 후보, ‘윤핵관’ 모두 이런 기본을 잊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고 쉽게 뒤집었다. 지지율 하락의 책임자들이다. 이게 국운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배를 뒤집기도 하는데 민심을 우습게 본 게 문제다. 배우자 리스크나 정책 무(無)비전과는 또 다른 문제다. 사과(謝過)의 진정성도 문제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섬뜩하리만큼 사과를 자주 한다. 기회만 있으면 사과한다. 아들 문제도 그렇고, 형수 욕설 문제도 그렇고, 대장동 문제도 일부 그렇게 한다. 진정성과는 별개로 사과한다는데 계속 비난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리는 영악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사과는 행동을 이기지 못한다. 말이 아닌 행동이 중요한데 논쟁으로 이기려 한다.
선거용 포퓰리즘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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