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8.23 11:56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린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온다고 전교생이 대청소를 하느라 며칠을 난리쳤다. 시범 수업하는 학급에선 똑같은 수업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연습했다. 누가 어느 대목에서 손을 들어 질문할지도 미리 정했다. 준비물은 평소와는 달리 이거저것 많았다. 각본대로 하는 수업은 그래도 긴장됐다. 그 사람과 교장선생님 등 여러 분들이 교실 뒤편에서 지켜보니 말이다. 뒤통수가 뜨거웠다. 속으로는 화가 났다. “왜, 저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지?” “교장선생님조차 왜 저렇게 쩔쩔매지?” 그런 이상한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의 에피소드를 다시 정리해 본다.
“야, 떴다. 떴어”. 아이들도 담임선생님도 숨을 죽였다. 교장·교감 선생님은 교문까지 뛰어나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그를 맞았다. 검은 양복 차림에, 박정희 대통령만 쓰는 줄 알았던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 사람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교문 안으로 들어왔다. 학교 운동장은 깔끔했다. 일주일 내내 운동장의 속살이 아프도록 쓸고 쓸었던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모범생이 됐다. 소리를 지르지도, 흙먼지를 내며 놀지도 않았다. 손톱도 깎았고, 코도 안 흘리려 애썼다. 선생님은 더 이상했다. 아이들에게 존경어를 쓰고 야단도 치지 않았다. ‘이상한 날’이었다. 어찌 보면 귀찮은 날이고, 어찌 보면 야단맞을 일 없는 편한 날이었다. 그 사람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장학사 뜨는 날, 온 학교가 비상 걸려
그 사람은 장학사(奬學士)였다. 장학사는 ‘권력’이었다. 밉보이면 빗자루나 축구공이 덜 오고,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니 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절절맨 거였다. 장학사는 교육청에서 일한다. 교육목표·교육내용·학습지도법 등 교육에 관한 모든 조건과 영역에 걸쳐 교육현장을 지도·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교육전문직 공무원이다. 장학사는 행정상의 지휘·명령·감독권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에게 도움을 준다.
장학사는 교감급이다. 행정공무원으로 치면 5급 사무관과 6급 주무관 중간 정도다. 장학사가 승진하면 교장급 장학관이 된다. 보직별로 3~5급이다. 장학사·장학관의 윗사람은 교육장이다. 교육장의 임명권자는 교육감이다.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교육장의 성향도 영향받을 수 있는 구조다. 지난 10년 사이 전국의 학생 수는 230만 명이나 감소했는데 교육청 직원은 38%나 늘어난 것은 교육청에 꼬박꼬박 내국세의 20.79%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꽂히기 때문이다. 돈이 넘쳐나니 직원을 늘리고, 학생들에게 현금을 마구 뿌리고, 교육감이 선심성 사업에 손을 댄다. 그렇게 마구 쓰고도 남은 돈이 연평균 1조8000억 원에 이른다.
우수 교사가 교단 떠나면 학생만 손해
이런 상황에서 교육전문직인 장학사(장학관)가 제 역할을 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문제다. 세간에는 교감이나 교장이 빨리 되기 위해 배를 바꿔 타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 지도 오래다. 잘 가르치던 교사 중 상당수가 교육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며 학생들의 곁을 떠나는 게 현실이다. 승진시험에 통과한 교사들은 장학사·장학관, 연구사·연구관, 교감·교장으로 옮겨 다니며 교단에서 멀어진다. 일반직으로 보자면 장학관과 연구관은 3~5급, 교장은 4급, 교감은 5급, 연구사·장학사는 6급에 해당한다.
장학사(장학관)는 교사들에겐 옥상옥(屋上屋)의 부담스러운 존재다. 학년부장, 학과부장, 교감, 교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로 심신이 피곤한데, 교장·교감도 절절매는 이들이 위에 버티고 있어서다. 국회의원이 교육부나 교육청에 자료를 요청하면, 교육부나 교육청에 근무하는 장학사(장학관)는 지역교육청에 자료를 요청하고, 지역교육청 담당자는 다시 학교에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명하는 구조다. 그러니 현장의 교사들은 늘 행정잡무가 많다고 울상인 것이다.
그런 장학사(장학관)는 교감(교장) 발령에서 1순위가 된다. 반면, 교단을 지키고 있는 교사들은 일반직 7급에 해당된다. 초·중·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교육전문가다. 이들만큼 교육에 대한 애정이나 교수법을 고민하는 교육자도 없다. 그런데 교단에서 멀어지는 교사들이 출세길이 빠르고,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은 승진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발생한다. 교사들이 자신들을 ‘막 교사’라고 자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교단을 떠나면 그 피해는 결국 학생이 보게 된다. 교사는 보람과 자존감과 명예와 사기로 일하는 분들이다.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후배나 동료가 장학사나 장학관을 일하다 학교의 교감이나 교장으로 컴백한다면 얼마나 열패감이 클 것인가. 이제는 교직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육행정기관에서 일하는 장학사·장학관과 연구사·연구관은 교육행정직으로 묶고,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자인 교사·교감·교장은 교육전문직으로 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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