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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엉뚱한 존댓말이 유행하고 있다

작성일 : 2021.09.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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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사물존대나 존칭 ''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 피해야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들어 왔다. 그만큼 예의(禮儀)에 밝은 나라라는 뜻이다. 예의는 태도는 물론 언어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말은 존댓말이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은 엉뚱한 존댓말이 유행하고 있다.

 

바로 사물 존대라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한 사람이라면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커피숍에서 들어보지 못했다면 백화점에서 이런 말을 접해 봤을 가능성도 있다. 바로 "신상 나오셨어요" "이쪽이 신상이십니다"와 같은 표현이다.


존칭 ''는 원래 상위자의 동작이나 상태, 또는 그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아버님께서 오셨다"는 동작, "선생님은 키가 크시다"는 상태, "충무공은 훌륭한 장군이셨다"는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기 때문에 ''를 사용할 수 없다. 사물에 ''를 사용하는 것은 "부장님, 넥타이가 참 예쁘시네요"처럼 착용물 등 그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커피 나오셨습니다""커피 나왔습니다"가 맞는 말이다. "신상 나오셨어요" "이쪽이 신상이십니다""신상 나왔어요" "이쪽이 신상입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커피숍이나 백화점 등에서 이런 잘못된 존칭을 사용하다 보니 '접대 경어'라 불리기도 한다. 사물에 ''를 마구 붙이는 이러한 말투는 물건이나 돈을 존대하는 꼴이니 정작 손님은 존대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매장이나 은행 등에서 흔히 듣는 "5만원이세요" "두 가지 선택 품목이 있으십니다" "10만원이 입금되셨습니다" 역시 잘못된 높임말이다.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높인 일종의 상술로 “5만원이에요" 또는 "5만원입니다" “두 가지 선택 품목이 있습니다" "10만원이 입금됐습니다"가 정상적인 표현이다.


이처럼 사물에 ''를 붙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높이는 기이한 표현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러잖아도 물신(物神)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사물을 존대하는 표현이 만연하는 것은 우연이겠지만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손님 가운데는 이처럼 ''를 붙여 가며 말하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 주인은 무조건 ''를 붙이라고 점원들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사물 존칭이 만연하다 보니 이젠 잘못된 표현이라는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어느덧 그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요즘 사람에게 사용하는 ''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튜브 등 SNS상에서 이러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전원을 켜시고 원하는 항목을 선택하신 다음 저장 버튼을 누르시면 편리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와 같은 경우다. 동작 또는 상태를 나타내는 모든 낱말에 ''를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를 꼬박꼬박 붙이면 말하는 사람도 발음하기 몹시 힘들고 듣는 사람도 거북하게 느껴진다. 이는 언어의 경제성에도 위배된다. 이 문장에서는 ''가 하나도 없어도 된다. "전원을 켜고 원하는 항목을 선택한 다음 저장 버튼을 누르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처럼 '있습니다' 표현 하나로도 충분하다.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존칭을 과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TV에서도 이런 장면을 보았다. 토론에 참가한 한 패널이 "평소에는 점잖으신 분이신데 약주를 드시고 이런 사고를 치셨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TV를 시청하는 다중을 상대로 한 발언에서 이같이 존칭을 남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는 객관적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더구나 좋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처럼 지나치게 존대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평소에는 점잖은 사람인데 술을 마시고 이런 사고를 쳤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바쁘신 분임에도 불구하시고 대외 활동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계십니다"라는 표현은 어떨까? 이 역시 ''가 과도하게 사용된 것이다. 객관적으로 언급해야 할 상황에서 이처럼 를 과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긍정적 활동임을 가만하더라도 바쁜 분임에도 불구하고 대외 활동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계십니다"라고 해도 충분하다.

 

요즘 이처럼 사물 존대 표현을 쓰거나 단어마다 ''를 붙이는 것이 마치 교양이 있는 사람의 어법인 양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존칭을 엉뚱하게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은 교양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로 상대를 존중하려면 어법을 정확하게 지켜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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