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8.23 11:56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다
강화군에도 커피 전문점이 많다. 읍내는 물론 해안가와 내륙, 그리고 석모도와 교동도 곳곳에서 다양한 커피 전문점을 볼 수 있다. 전통 ‘다방’은 대부분 사라져 어쩌다 발견하면 정겹기까지 하다. 한 잔에 4000~6000원 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한다. 다방에서 ‘냉커피’라고 불리던 메뉴의 현대판이다. 커피숍에서 불현듯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커피를 동시에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이렇게 주문한다고 가정하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커피라? 매력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모순(矛盾)이다. 그런 커피는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나 냉커피를 따로 시켜 마실 수밖에 없다. 중국집에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메뉴가 있다. ‘짬짜면’이다. 짬뽕과 짜장면을 반반씩 제공한다. 손님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다. 그러자 코스 요리 후 서비스하는 짬짜면에 그치지 않고 정식 메뉴로 서비스하는 음식점이 적지 않다. 이런 메뉴에는 모순이 없다. 고객 취향이 최우선이다.
언론의 팩트 보도는 펄펄 뛰는 심장
음식점은 손님을 잘 모셔야 하고, 언론은 독자(시청자)를 잘 모셔야 한다. 음식점이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개발하듯, 신문은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메뉴(기사)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제공할 수 없는 메뉴도 있고, 제공해서는 안 되는 메뉴도 있다. 짬짜면처럼 나중에 한 잔 커피 값으로 핫커피와 아이스커피를 반잔씩 제공하는 메뉴가 등장할지는 몰라도,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를 한 잔에 제공하기는 어렵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고발, 의혹 제기는 숙명이다. 그렇다고 팩트(사실)에 맞지 않는, 팩트도 확인하지 않은 엉터리 기사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팩트 확인 과정은 펄펄 뛰는 심장과 같다. 팩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거짓의 베일을 벗기고 진실의 빛을 밝힌다.
언론이 팩트를 외면하고 허위·날조 기사를 내보낸다면 이는 명백한 사기다.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는 피노키오이고 거짓말쟁이고 사기꾼과 다름없다. 언론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서치라이트(search light), 세상을 비추는 거울(mirror)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언론의 치열한 열정 덕분에 미국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한국에서는 언론이 최순실 사건의 전모와 조국과 윤미향 같은 음습한 사건의 실체를 고발했다. 기자는 진실성과 객관성이 생명이다. 그래야 독자의 신뢰를 얻고 독자를 진실 추구의 동반자로 합류시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몰염치한 유튜버나 사이비 기자의 허위·날조·가짜 기사가 퇴출된다.
문 대통령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기둥”, 현실은?
그게 언론의 정도(正道)인데 최근 더불어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중재법은 어이가 없다.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는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물리겠다는 게 요지다. 고의·중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도 언론이 지게 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법처럼 보여 일부 사이버 언론이나 유튜버의 전횡에 피해를 당했던 이들은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뜯어보면 세계 최고의 악법이다. 무엇보다 ‘허위 보도’ 기준이 명확치 않다. 명백히 허위인 경우는 허위가 아니라 범죄다. 고의에 의한 허위로 밝혀지는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추상같이 지우면 된다. 그런데 잣대도 명확치 않은 ‘허위’를 내세워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고의뿐 아니라 부주의로 인한 오보까지 처벌하겠다니 세계신문협회와 국제언론인협회까지 비판하는 게 아닌가.
언론은 오보를 최소화해야 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며, 오보로 인한 피해는 합리적으로 신속하게 보상해야 한다. 또한 언론이 독자에게 이슈를 정확하고 균형감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언론의 자격이 없다. 언론의 핵심은 기자다.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이다. 기자는 질문하는 직업인이다. 기자는 경청하는 직업인이다. 기자는 현장을 관찰하고 메모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직업인이다. 따라서 기자는 죽치고 앉아서 컴퓨터 자판만 두드려서는 안 된다. 현장을 탐색하면서 정확한 취재를 바탕으로 독자에게 “자물쇠 속에 열쇠가 돌아가도록 하는 느낌”을 주도록 기사를 써야 한다. 그게 기자의 기본 자질이다.
언론중재법은 퇴행… 펜이 더 강건해야
그러려면 언론의 책무감과 자율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함께하겠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며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누구도 흔들 수 없다.” 당연한 언급이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기둥인데 작금의 정부 여당은 언론 재갈이 민주주의의 기둥인 냥 착각하는 듯하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전 세계 권위주의 정부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려 가짜뉴스법을 채택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런 추세를 따르다니 실망스럽다”고 했다. 적확한 지적이다.
중앙 무대의 언론중재법 논란은 강화지역 언론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화지역 언론도 좋은 기사를 발굴하려는 선의의 자율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여러 제약이 따를 것이다. 고발이나 의혹 기사는 징벌적 5배 처벌규정이 뒷골을 때려 진실 추구 취재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악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 법을 논하기 전에 향토 언론들도 숙고해야 한다. 비판을 위한 억지 비판 기사, 사실과 동떨어진 과장 보도, 특정인에 대한 음해는 언론의 공정성·균형성·독립성·객관성·투명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저급 행위다. 인쇄 메일 스크랩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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