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8.23 11:27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수탉 두 마리가 죽기 살기로 싸운다. 한 놈이 피를 흘리며 꽁무니를 뺀다. 암탉을 독차지하게 된 수탉은 우쭐해진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지붕에 올라가 ‘내가 이겼다’며 날개를 퍼덕인다. 순간, 독수리가 날아들어 수탉을 낚아챈다."
톨스톨이의 『우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승리에 도취해 오만하게 힘 자랑 하던 수탉, 한 치 앞 제 운명을 내다보지 못했다. 힘을 함부로 쓰다가는 순식간에 몰락할 수도 있다는 교훈이다.
동물의 세계는 냉혹하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 목숨까지 뺏는다. 인간 세계의 권력 투쟁 또한 냉엄하다. 내 편과 네 편 갈라치기가 암약하고 힘 있는 자에게 균형이 쏠린다. 선거판 정치 세계는 더 그렇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초창기에는 서슬이 퍼렇다. 오만한 권력은 ‘과욕’의 가속 페달을 밟는다. 전임자가 벌인 일을 뒤집는다. 좋은 정책도 일관성을 잃는다.
바이든도 트럼프 뒤집기, 권력은 냉정하고도 허무한 속성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보자. 4년 전 집권하자마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지우기에 나섰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힘을 한껏 과시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이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탈퇴를 강행했다. 트럼프는 코로나 19가 급습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의 꼭두각시”라며 탈퇴 방침을 천명했다. WHO가 중국 발(發) 바이러스 감염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엉거주춤 중국 눈치만 본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제 공조가 시급한 상황에서 국가 간의 적대감만 키웠다. 이슬람 일부 국가를 상대로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멕시코와의 국경엔 장벽 건설을 추진했다. 화해와 공조의 국제 질서 근간을 뒤흔들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명분으로 파워 게임에 몰두했다. 그러다 부메랑을 맞았다.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두고 선 허리케인과 산불 등 ‘자연의 복수’를 당했다는 풍자까지 나돌았다.
트럼프 권력은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트럼프 웨이(Way)’는 단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뒤집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행정명령이 상징적이다. 파리기후협약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세계 주요 국가가 맺은 국제 조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정부 시설의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했다. 트럼프의 ‘마스크 외면’ 고집불통 정책에 진솔한 반성문을 쓴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00일 주요 과제로 꼽은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 기후변화 대응, 이민 정책 수정 등 반(反) 트럼프 정책은 하나둘씩 시행 중이다. 이전 정부의 잘 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신속한 조치이지만 권력 세계의 냉엄함이 꿈틀 거린다. 트럼프 입장에선 허무할 게다.
트럼프에 비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던 미국 뉴욕타임즈(NYT)가 최근 보도한 “바이든이 100일 동안 해야 할 일(Biden's 100-day to-do list)”이라는 기사가 흥미롭다. “가볍게 춤추기(Do a little dance)”, “진솔하게 경청하기(Listen. Really listen)”, “카멜라(부통령)에게 확실히 힘 실어주기(Ensure peaceful transition of power to Kamala)” 등등이 그렇다. 유우머가 담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메시지다. 100일 동안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권력을 잘 나누라는 주문일 게다. 전임 지도자의 독선이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왔는지를 은유적으로 비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책은 연속성이 중요, 정권마다 바뀌면 결국 국민만 피해
집권 후반기인 문재인 정부는 미국 행정부의 현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초창기 보여준 의욕과 목표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가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이솝우화의 수탉처럼 힘자랑하듯 전(前) 정권은 물론 전전(前前) 정권의 적폐까지 청산하겠다며 날개를 퍼덕였다. 부패한 권력과 사회적 독소는 도려내는 게 마땅하다. 국민 호응도 컸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학교(?)’에 갔다. 그러는 사이 소득주도성장, 탈 원전, 세금 중심의 부동산 정책, 공수처 설치 등 숨 가쁜 레이스가 펼쳐졌다. 국민은 둘로 갈라졌다. 국민적 공감대나 합리적 절차가 부족했다. 감성과 이념의 정책 기제가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정의와 공정의 이중성은 더 큰 논란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지적했듯 ‘내로남불’을 셀 수 없을 정도여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문 대통령은 1월 27일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현 정부 들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한 27번째 ‘아시타비(我是他非)’ 인사다. 군주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그 출발은 경청이다. 귀를 열어야 한다. 뉴욕타임즈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왜 “경청하라”고 주문했겠나.
세계적인 권력술 전문가인 미국의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에서 “승리하면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겼다고 질주하지만 말고 전후좌우를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리 안 하면 그간의 공도 물거품 되고 수탉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너무 멀리 나가면 지금까지 물리친 적보다 더 많은 적이 생겨 결국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자치단체는 행정 연속성 더 중요, 따듯한 ‘주민 퍼스트’ 철학이 승부수
자치단체도 중앙정부와 다를 바 없다. 누가 단체장이 되느냐에 따라 권력이 요동친다. 여기저기 자리가 바뀌고 전임자 지우기도 횡횡한다. 동네 주민의 삶을 좌우하는 지방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좋은 행정은 살리고, 허울 행정만 도려내야 하는데 중앙정부처럼 ‘뒤집기’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실력이 부족한 건지, 철학이 없는 건지 답답하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인쇄 메일 스크랩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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