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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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교수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내가 언론에서 보는 것은 왕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원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가 언론에 대해 한 말이다. 언론 태동기에도 독자들이 원하는 건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지 권력을 움켜쥔 왕의 칭송 기사가 아니었던 거다. 볼테르가 언론에 날린 ‘직격탄’은 뉴스 콘텐츠의 방향성에 대한 언론의 자명고(自鳴鼓)가 되고 있다.
# 뉴스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사실 뉴스는 원천적으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언론이 보도하는 뉴스 자체가 사람을 다루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인 까닭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권력 투쟁과 돈, 행정 정보, 행정 감시, 각종 범죄와 사고를 다루는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뉴스는 시의성, 일탈성, 갈등성, 근접성, 저명성, 영향성, 희귀성, 인간적 흥미성 등으로 보도 가치의 경중을 따지는 데 이중 인간적 흥미성은 독자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언론의 대표적인 보도 영역이다.
예를 들어보자. ①강화읍에서 불량 청소년들 간에 시비가 발생한다. 폭언이 오가고 서로 치고받아 일부가 다친다. ②정치인이 강화 풍물시장을 방문했는데 상인들이 공약을 안 지켰다며 거칠게 항의한다. 고성이 오갔고 정치인은 물벼락을 맞는다.
두 개의 사건에는 모두 사람이 등장한다. ①은 불량 청소년, ②는 정치인이다. 어느 사건이 더 뉴스 가치가 높을까. 강화라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기자들은 둘 다 욕심을 낸다. 하지만 두 사건 중 하나만 보도해야 한다면 당연히 ②번이다. 인물의 저명성이나 중요성, 영향력 면에서 정치인은 불량 청소년과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기자가 ①번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하던 중 불량 청소년 무리에 강화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유력 인사의 자제가 포함된 사실을 알아냈다면 어떨까. 뉴스 가치가 확 달라진다. 당연히 후속 보도는 ①번 이 ②번을 집어삼킨다. 기자의 끈질긴 집념이 찾아내는 뉴스의 팩트(fact)는 그만큼 중요하다. 팩트 확인은 언론의 기본이고 생명이다. 팩트에 근거한 보도는 그 어떤 뉴스보다도 가치가 있고 소중하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취재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언론은 기자에게 넉넉한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늘 데드라인(dead line)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사회 현상의 속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쪽박 끌듯 적은 취재량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러다 보니 취재원의 현란한 세 치 혀에 속아 가짜뉴스(fake news)를 만들거나 오보를 토해내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취재 생태계는 언론인에게 윤리적 삭풍(朔風)을 맞게 한다.
중앙 언론과 비교해 취재 여건이 열악한 지역 언론은 더 그런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다. 서울 중심의 ‘초 집중화(hyper-centralization)’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지역 언론의 취재 생태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게다가 ‘디지털 생태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재정과 인력이 녹록지 않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강화군의 뉴스를 다루는 ‘향토 지역 언론’이 활성화하고 있는 건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강화 ‘향토 언론’은 주간지 6개, 인터넷신문 4개 등 모두 10개로 알고 있다. 강화 역사상 이렇게 많은 향토 언론이 활발히 움직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강화 군정에 관한 관심과 강화 주민들의 민도가 높아지고, 지역 사회에 대한 정보 수요가 많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보도는 객관성, 사실성,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중앙 언론이나 광역단위의 지역 언론, 향토 언론도 언론의 보도 방향은 다르지 않다. 객관성, 사실성, 공정성이다. 그 핵심은 앞서 말한 사람 중심의 ‘팩트’ 보도이다. 향토 신문은 ‘깨알’ 같이 자세하게 군정(郡政)과 우리 이웃의 소식과 향토 명물을 다룰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홈그라운드의 장점이다.
필자가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 경험했던 향토 신문이 그랬다. 연수지역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초박빙 지역으로 관심을 모았던 노스캐롤라이나주였다. 그 지역에는 광역 로컬 페이퍼로 ‘뉴스 앤 옵저버(News & Observer)’와 다운타운 소식을 다루는 향토지인 ‘채플힐 뉴스(Chapel Hill News)’가 있었다. 두 신문은 차별화된 지역뉴스 중심의 취재시스템을 가동했다. 뉴스 앤 옵저버는 주 정부와 주의회 중심의 콘텐츠를 다루지만, 채플힐 뉴스는 철저히 동네 사람 중심의 세상사를 담은 콘텐츠가 중심이었다. 다운타운의 새 꽃가게나 음식점 개업 소식은 물론 유치원, 출산, 부음(訃音), 건강, 학교, 동아리, 대학 소식 등을 돋보기처럼 보도했다. 물론 자치단체의 행정 감시는 당연하고 비판에도 날을 세웠다. 홈그라운드의 장점과 뉴스 수요를 파고든 절묘한 조합이었다.
# 지역 언론은 인삼차 같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우리 고향의 언론도 그런 방향으로 펜을 잡았으면 한다. 객관적인 사실과 공정을 바탕으로 군정에는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향토 소식은 깨알처럼 고소하고 자세하면서도 온몸에 활력을 주는 따뜻한 인삼차 같은 콘텐츠가 그것이다. 군정의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할 때는 철저히 사실 확인에 근거한 취재와 상대방 입장 반영은 필수다. 사실을 찾아다니며 진실의 조각을 맞추려면 시간과 발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기자들을 ‘진실 찾기’나 ‘퍼즐 맞추기’에 목숨 건 이상한 직업인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 고달픈 과정에서 팩트 파인더로서의 책무와 도덕적 무장이 두터워진다.
깨나 인삼차 같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군민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강화 군민이 무슨 정보를 갈망하는지, 강화 군민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길은 무엇인지, 강화 군민의 건강에 어떤 정보가 도움이 되는지, 강화 군민의 교육 수요가 무엇인지” 등등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언론학자인 터그먼이 “뉴스는 매일 신선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소비자 상품”이라고 강조했듯, 뉴스 콘텐츠는 참신성이 중요하다. 뉴스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강화 전체 인구의 인구 분포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전체의 35%가 넘는 노인, 중장년층 분포, 초중고생 수, 그리고 면(面)별 특성 등을 입체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다.
미국 신문처럼 못할 것도 없다. “주민이 유명을 달리했다거나, 아이가 태어났다거나, 팔 순 잔치를 열었다거나, 선생님이 새로 부임했다거나, 해병대가 봉사활동을 했다거나” 하는 소식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다루자는 얘기다. 사람의 향기가 물씬한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꼭 새겨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항상 의심하고 다시 짚어보고 취재 윤리를 생각하자”라는 것이다. 언론인이란 직업은 참 고달프고 힘든 직업이다. 그렇지만 언론인의 공정한 펜은 세상을 밝히고 정의를 공고히 하고 정보를 풍성하게 하는 밀알이다. 촉은 엄정하되 마음은 따뜻한 펜이다. 우리 고향의 향토 신문이 강화의 ‘비타민’이자 ‘등불’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양영유
1964년 강화군 양도면 출생. 동광중, 인천 선인고, 고려대 영어교육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 넘게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정책사회부장, 사회1부장, 사회부국장, 행정국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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