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1.22 21:05
▲김포와 강화를 연결한 첫 번째 연륙교 강화교의 시작점이다. 맑고 깨끗하고 인심좋은 고장 강화라는 문구로 반기고 있다. <사진=바른언론>
현재 섬인 강화도에서 김포를 통해 육지로 가는 길은 강화대교를 비롯해 초지대교 두 개의 연륙교가 존재한다. 군민들의 교통로이자 많은 관광객 등의 유동 인구가 이 교통로를 이용한다. 강화도에서는 다리를 지나지 않으면 육지와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강화에서는 소중한 다리라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당시 변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이전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를 통한 철저한 검열을 통해 확산을 막을 전례도 있다.
또한, 강화군 안에서도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가 개통하면서 편리한 교통길이 개척돼 강화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강화계양고속도로의 착공예정으로 제 3의 강화 연륙교가 탄생을 앞두고 있고, 영종도와 강화도를 잇는 다리, 서도와 주문도를 잇는 다리 또한 진행함에 있어 앞으로는 더욱 편리한 교통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강화에 만들어진 최초의 연륙교, 강화교를 기억하고 있는가? 강화대교 지나다보면 그 옆에 위치한 역사속으로 사라진 강화교가 보인다.
강화교는 1965년 7월에 착공을 시작하여 1969년 1월에 개통됐다. 당시 강화교는 광복 이후 놓인 다리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할만큼 크고 긴 다리였다. 총 길이는 694m, 넓이 10m, 교각 15대교 지어진 강화도는 현재 발전된 교각기술에서는 미비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토목 기술이 접목된 강화교였다. 강화교 생성되기 이전 김포에서 나룻배를 통해 강화도를 건너는 시간은 약 30분이 걸렸지만 강화교 착공으로 인해 3분으로 줄면서 강화와 육지의 삶을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80년도에 들어 강화군이 발전되고 유동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왕복 2차선인 강화교는 심각한 교통의 정체를 낳았을뿐만 아니라 점점 노후해갔다. 또한 당시 행정구역이 경기도였던 강화는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변경돼 행정구역을 강화 옹진으로 넓혀짐에따라 1993년 강화대교를 착공하기 시작하여 1997년 강화대교 완공에 따라 강화교는 그 쓰임이 다해 폐쇄됐다.
▲강화교 위의 모습으로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도로가 있으며, 펜스를 통한 안전성과 CCTV 또한 설치돼있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사진=바른언론>
이후 강화교는 노후화로 인해 차량 통행이 금지된 채 방치되고 있다가, 2010년대에 실시한 안정성 검사를 통해 자전거가 사람은 통행이 가능한 C등급을 판정을 받어 인천광역시청이 유지 및 보수를 통해 자전거 전용 통행로로 재탄생했다.
또한 강화교를 관광자원으로 되살려, 평화통일의 기원이 되는 평화의길 코스로 탈바꿈하며, 통일관광 자원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DMZ 평화의길 조성사업’이 시작돼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라는 주제로 강화교가 그 시작점이 됐다. 현재는 강화전쟁박물관, 6.25참전유공자 기념공원, 연미정, 평화전맹대, 남북 1.8 평화센터에 이르는 도보 코스로 연결돼 많은 관광객들이 강화교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강화교는 DMZ평화의길 시작코스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여, 좋은 산책길을 제공해주고 있다. <사진=바른언론>
또한 강화교는 정밀안전진단과 용수관 증설을 통해 한강물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800mm의 강관이 설치돼있어 보다 강화 농업을 위해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강화교를 생각하면 아주 유명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첫 번째로 연륙교가 만들어져 강화도 육지와의 소통을 이뤄냈고, 노후와 되어 쓰임이 다한 후에도 자전거길이 형성돼 염하강을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평화의 길 시작코스가 돼 통일을 위한 염원을 닮겨진 의미도 부여받았다. 더군다나 강화 농업인들을 위한 한강물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실내도 좋지만 건강을 위해 과거 강화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또한 서해의 경치를 바라보며, 평화의길 코스, 강화교 위에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는건 어떨까?
한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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