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1.10 16:43

▲강화 양도면 하일리에 위치한 정제두의 묘의 모습이다. <사진=바른언론>
불은면을 지나 양도면사무소로 가는 길 언덕에 도로 왼쪽을 보면 큰 묘지가 보인다. 안내 표지판을 보면 정제두의 묘이다. 고등교과과정이나 국가공인의 한국사 시험에 양명학 부문에 필수적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에 지정될만큼 소중한 강화 역사문화유산 정제두의 묘, 정제두는 어떤 인물일까?
정제두는 조선에 전파된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한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이다.
양명학(陽明學)은 중국 명나라의 철학자 왕수인의 호인 양명(陽明)에서 이름을 따서 붙인 유가 철학(儒家哲學)의 한 학파로 주관적 실천 철학에 속한다. 양명학이라는 학문의 명칭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대 이후에 붙여진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육왕학(陸王學) 또는 왕학(王學)이라 불렸다. 육왕학(陸王學)은 육구연(陸九淵)의 학풍을 이어 왕수인이 대성한 유학(儒學)을 뜻하고, 왕학(王學)은 왕수인의 유학을 뜻한다.
양명학의 시초는 주자학이다. 주자학은 중국 송나라 시대 만들어진 학문이다. 옛 성인들의 문헌이 담겨진 사서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경전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이 해석을 왕이 나라를 집권하는데 필요한 자체석 해석으로 변질돼 왕권 강화의 재료로 전략했다. 이에 왕수인은 주자학의 도덕적인 측면을 되살리려 만든 학문이 양명학이다.
주자학은 정치학, 존재론, 주석학, 윤리학, 방법론 등을 모두 포괄하는 학문이지만 양명학은 그 중 도덕적인 윤리학과 방법론에 중점을 두는 학문이다.
양명학의 가장 중요한 3강령은 심즉리(心卽理) · 치양지(致良知) ·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첫 번째로, 심즉리(心卽理)는 양명학의 윤리학적 내용으로서 태어날 때 생겨난 순수한 선과 감정으로서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인 정 그 자체가 이치(理)와 다름없다고 하는 사상이다.
두 번째로, 치양지(致良知)는 양명학의 방법론적 내용으로 왕수인이 독자적으로 만든 사상이다. 치양지란 양지를 전면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며, 양지에 따르는 한 그 행동은 선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양지에 근거하는 행동은 외적인 규범에 속박되지 않는 말이다. 마음은 선악을 넘은 것이지만, 뜻에서 선악이 태어난다. 그 선악을 아는 것이 양지 말고는 안 되며, 그러므로 선을 바로 잡기 위해서 양지를 키우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양지의 상태 중의 하나로 말과 실천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같다는 사상이다.

▲정제두의 묘를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QR코드를 통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양명학의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돼있다. <사진-바른언론>
정제두는 중국의 양명학 사상을 조선 후기 때 받아들여 조선식으로 변형하여, 성리학 중심의 조선의 유교 사상을 재해석한 인물이다.
정제두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숙종, 경종, 영조 때까지 중직을 지냈고, 61세에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하곡(霞谷) 마을로 옮겨와 학문 정진 및 제자 육성에 힘썼다.
가래울마을 시절에는 한국 양명학의 유일한 저서인 『존언(存言)』을 저술하였다. 강화도 거주 시기의 노년에는 유학의 본뜻을 기리는 경학과 심학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저서로는 양명학의 치양지설(致良知說)과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받아들여 저술한 『학변(學辨)』, 『존언』 외에도 경전 주석서인 『중용설』, 『대학설』, 『논어설』, 『맹자설』, 『삼경차록(三京箚錄)』, 『경학집록』, 『하락역상(河洛易象)』이 있다. 또한 송대 도학자의 저술에 대한 주석서인 『심경집의(心經集義)』, 『정성서해(定性書解)』, 『통서해(通書解)』 등이 있다.
또한,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화학파를 형성한 뒤 이건창, 이건승을 이어 박은식 정인보에게로 그 학통을 계승했다.
정제두의 조선시대 양명학은 그 의미가 크다. 성리학의 이론보다는 유교를 재해석하며, 이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큰 의의를 둔다. 후대에는 정제두의 강화학파는 양명학 사상인 붕우 관계를 중요시하여 계층을 뛰어넘는 신분제를 폐지를 주장한 학파이기도 하다.
현재 정제두는 학문적 업적을 기려 시흥시의 가래울마을에 ‘추곡 정제두 선생의 유허비’를 세워 한국 양명학 대종사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정제두의 묘비 앞에 비문은 양명학 강화학파의 제자가 썼다고 전해진다. <사진=바른언론>
정제두 묘(鄭齊斗 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769번길 52에 있으며, 2007년 2월 26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됐다.
묘비는 1803년에 세워졌으며 묘비 앞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정제두의 강화학파 제자인 신대우(申大羽)가 짓고 서용보(徐榮輔)가 썼다고 전해진다.
묘역은 완만한 경사지에 사성이 없이 용미만이 길게 되어있고, 그 앞에는 원형봉분이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하계부분에는 좌우에 민무늬로 된 상단에 띠를 2개 두른 망주석과 금관조복에 양관을 한 문인석이 있다.
현재 정제두의 묘는 강화 나들길 4코스(가릉~정제두 묘 ~ 하우약수터 ~ 이건창 묘 ~ 건평나루 ~ 외포여객터미널 ~ 외포어시장 ~ 망양돈대) 중 하나로 강화의 서쪽 해안가를 거닐 수 있는 길이다.
이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하고, 붕우 관계를 중요시하는 마음의 양명학은 현대인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학문이다. 과거의 학문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키우기 위해 정제두의 묘를 관광하며, 머리를 식히는 여행으로 추천한다.
한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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