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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칼럼] 고전과 옛 명사들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 사회

작성일 : 2023.12.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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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인하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2012년 이후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경우도 처음인 것 같다. 문제는 정치와 국회다.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은 ‘과학과 첨단 기술, 교육과 문화, 경제와 무역, 지식과 정보, 창의력과 다양성, 인적 물적 자원과 에너지, 국격과 국가 경쟁력, 우주 항공과 해양 해저, 지도자의 리더십과 정치 문화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며 21세기 무한 경쟁의 고지(高地)를 선점(先占)하고자 전쟁 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총체적 분열과 갈등, 최악의 적전 분열과 안보 불안 상태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될 자들이 각 분야에서 힘을 갖고 ‘목소리 큰자가 승리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비정상적인 행태가 보편 일상화되었다.

두더지형 리더십, 똥파리형 인간, 속 빈 파도 물결형 인간, 침 뱉는 라마형 인간, 비버류형 인간, 들개떼 인간들의 이벤트들이 악성 스트레스로 사회 분위기를 산성화시키고 있다.

특히 2016년 5월 6일, 김정은은 ‘외톨이 대관식’을 통해 북한 노동당 제1비서로 등단했다. 중국·러시아 등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아서 양복에 넥타이 매고 ‘외톨이 대관식’으로 초라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이젠 미국 대통령과 독대하고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향해 협박과 막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무엇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한국을 배우자’며 특집기획기사를 보도하고 고전하던 일본이 ‘아베노믹스’ 5년 만에 역대 최고 순익으로 90년대 초호황 기록을 깼다는 보도는 또 다른 쇼크였다. 아베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재기를 위해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교수로부터 5년 동안 경제정책을 공부했다. 2012년 총리가 되자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돈을 풀겠다”고 선언했다.

지도자가 돈 풀어 기업들을 적극 후원하고 기업은 구조조정하면서 획기적인 결과를 낳았다. 중국은 정치적 안정과 지도자가 일관된 산업정책을 펼쳐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도 선두 자리에 올라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기업 CEO들을 국감장에 불러 호통을 치거나 망신을 주는 식의 ‘생색내기용 국감’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는 등 경제를 향한 정치적 주먹질과 발길질이 멈추질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할 때, 유명한 고전과 옛 명사들의 말에서 재음미해 볼 것은 없을까? 그래서 떠오른 것이 에밀 졸라, 폴 랭그랑, 토마스 만, 메릴 플로드와 멜빈 드레셔, 그리고 앨버트 티커 교수 등이다. 왜냐하면 명작이나 명언은 다시 읽고 재음미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시사를 주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는 그의 소설 ‘인간 짐승’(1890)에서 현대(그 시대)를 기관사와 화부가 없는 기관차로 표현하고, 현대인을 기차 승객, 즉 ‘술 취해 군가를 부르며 눈앞에 닥칠 큰 재앙을 모르는 군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관사(자크)와 화부(패쾌)가 싸우다 뒤엉켜 철로에 떨어져 죽는다. 친한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한다. 달리는 기차에는 전쟁터로 가는 군인(현대인)들이 잔뜩 타고 있는데, 이들은 술에 취해 목청껏 노래를 부를뿐 잠시 후에 닥칠 종말(비극)을 생각조차 못한다. 모두 다 자기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서 본분을 망각하고 제정신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 내면의 동물적 요소인 충동, 본능, 욕구, 증오심의 노예가 되어 성폭행, 불륜, 살인을 한다. 법원장(그랑모랭)사건은 집권층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흐지부지 되거나 판사는 엉뚱하게도 등장인물 중 가장 순진한 카뷔슈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종신형을 선고한다.

오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진실은 은폐되고, 법정마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 모두 인간 짐승들이다. 에밀 졸라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디를 향해 가는가?’라고. 우리 현실에서 무언가 생각게 하는 소설이다.

한 편 폴 랭그랑은 “현대(산업사회)의 정신적 상황을 감옥에 비유하여 현대인을 수감자”라고 했다. 비뚤어진 교육관(교과 위주, 학력 위주, 입시 위주, 정형화된 문제 풀이의 반복)으로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이라는 감옥, 출세열과 기복사상의 연장에 불과한 열풍을 ‘교육열’로 착각, 나라 전체가 ‘과외 열풍’에 빠져 학교의 학원화, 학원의 학교화라는 현상은 또 다른 ‘학벌주의 감옥’이 아닌가. 그 밖에 자기들만의 등화관제에 갇혀 편견과 아집에 허덕이는 병리적 감옥은 많다. 이념과 민주화, 노조와 촛불 우상 등.

그런가 하면 토마스 만은 현대 문명을 ‘결핵 요양소’로 비유했고, 현대인은 그 요양소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로서 모두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걸려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현대인은 신체적으로 무서운 질병인 결핵에 감염되었고, 정신건강상 문제도 있기 때문에 모두 치료를 요한다는 말이 되겠다. 이 역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 아닌가.

끝으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할 때, 플로드와 드레셔, 티커 교수 등이 주장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연상된다. 즉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모두 눈앞의 자기 이익과 고집(왜곡된 사고와 편견)만 챙기려다 같이 공멸(침몰)하게 된다는 최악의 상황 말이다.

매년 초마다 “혁신·미래 먹거리·사회적 책임으로 위기 넘자” “경제 발전의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대기업 총수들의 ‘신년사’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IMF를 졸업했다고? 정치, 관료, 재벌, 노조도 안 변했소”라는 세계적 석학 고(故) 돈 부시 교수의 충고와 함께 ‘기업이 사회변화와 발전을 주도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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