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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고려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선생 묘

작성일 : 2023.12.17 09:21 수정일 : 2023.12.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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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에 존재하는 이규보 선생의 묘. <사진=바른언론>

이규보(1168~1241)는 고려의 무신정권 시기에 문신이자 천재의 문장가라고 불린다. 그는 1191년(명종 19년)에 4번째 만에 국자시에 응시에 수석으로 합격하며 관직을 길을 시작했다. 천재라 불리는 최고의 문장가였지만 지엽적 형식주의에 젖은 과시의 글을 굉장히 멸시했기 떄문에 응시만에 합격했다고 전해진다. 

이규보는 무신정권의 최충헌(崔忠獻)의 시대로 불리울만큼 무신의 힘이 강화됐던 시기라 문신들의 자리가 없었지만 초청시회(招請詩會)에서 최충헌을 국가적인 대공로자로 칭송하는 시를 짓고 나서야 신임을 받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정2품)의 높은 관직까지 올랐다. 

이규보는 학식이 풍부하였으나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바를 그대로 표출한 시를 쓰는 것을 즐겼지만 또한 입신출세주의자이며 보신주의자로 최씨 정권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같은 수많은 시와 산문은 만들었으며, 그 작품들은 대부분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동명왕편’이 해당된다. 동명왕편은 고치 고구려사 연구와 우리 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로 현재 큰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당시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도시대가 열릴 때 팔만대장경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지음으로써 민족 수호를 위한 고려인들의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현재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쓴 당대의 최고의 지성인 중에 하나다.

이규보 묘(李奎報 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길직리 산115)에 위치하고, 1972년 5월 4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됐으나 강화도가 경기도에서 인천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함에 따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제15호 기념물로 재지정됐다. 

 


▲묘역 주변에는 ‘이규보선생문학비’를 비롯해 ‘고려이상국문순공하음백규보지묘’ 라는 이규보 선생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는 비석이 존재한다. <사진=바른언론>

묘지는 진강산 동쪽에 연접했고 덕정산의 남동쪽 지맥에서 뻗어내린 낮고 편평한 구릉에 위치한다. 묘역의 면적을 668.9㎡이며 묘역 좌측 아래에는 영정을 모신 유영각(遺影閣)과 묘역정비기념비(1991년 건립), 이규보선생문학비(1983년 건립)가 있다. 우측에는 신도비와 재실인 사가재(四可齋)가 건립돼있다. 


▲봉분 아래쪽에는 영정을 모시는 유영각과 사가재가 있으며 현재 여주이씨 문순공파 대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진=바른언론>

봉분은 지름 3.8m의 원형이며 뒤편에 꼬리 이어져 2단으로 조성된 사성(莎城)과 연결된 모습이다. 봉분 하단에는 현대에 설치된 병풍석이 조성되어 있다. 봉분 앞에는 2단의 계체석이 있으며 그 아래로 상석과 향로석 등이 있고, 좌우에 석인상과 석양이 한 쌍씩 배치됐다. 봉분 전면 우측에는 ‘고려이상국문순공하음백규보지묘(高麗李相國文順公河陰伯奎報之墓)’라 새겨진 묘비로 진양진씨(晉陽晉氏)와 합장돼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규보 선생의 묘는 비교적 관리 상태가 좋다. 작은 공터로 주차장도 마련됐을뿐만 아니라 가는 입구 또한 차로도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여주 이씨 문순공파 대종회에서 이규보선생의 묘를 따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규보 선생의 묘는 강화나들길 제 3코스(온수공영주차장 → 성공회온수성당 → 길정저수지 → 이규보모 → 석릉 → 가릉) 중 하나로 고려시대의 중요한 묘역들이 자리잡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하게 역사문화유산을 탐방하면서 그 시대의 역사적 시대를 생각하며, 항쟁의 역사를 통해 수호의 스토리를 느끼면서 자연과 함께 트래킹을 즐긴다면 추억에 남는 강화 여행이 될 것이다.

한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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