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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세상 촉] 책 읽는 강화, 멋진 일 아닐까

작성일 : 2023.12.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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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자 시절 미국에 연수 갔을 때 부러운 게 있었다. 동네 도서관이었다. 아담한 규모의 도서관에 들어서면 책의 향기가 반갑게 맞이했다. 도서관은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이용 제한이 없었다. 도서관에는 어른과 함께 온 어린이가 많았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와 책을 읽어 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팔순에서 구순 되는 나이의 조부모가 손자, 손녀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필자가 1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한 마을은 조그만 동네였다. 다운타운에 대학이 있고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유명한 연구센터가 있었다. 주거지인 아파트 주변은 숲이 우거진 고즈넉한 동네였는데 도서관은 마을의 중간쯤에 있었다. 부모와 함께 온 미국인들을 보고 필자도 아들과 딸을 데리고 도서관에 여러 번 갔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을 좋아했다. 거기서 미국 아이들과  사귀고 책을 빌려왔다. 외국인에게도 3주간 10권을 빌려주는 도서관의 인심은 넉넉했다.  

미국의 마을 도서관 인상적… 우리는 인프라 부족

그때의 추억이 문뜩 떠오른 것은 우리나라에는 마을 도서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주요 지하철역에 미니 도서관이 있어 약속 시간이 남으면 그냥 책꽂이에서 책을 하나 꺼내 읽는 시민이 적지 않다. 구청별로는 당연히 도서관이 있고 시립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대학에도 도서관이 있고 초·중·고교에도 제법 잘 구비된 도서관이 많다. 인프라가 농어촌 지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농어촌지역은 인프라가 미흡하다.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에 공공 도서관이 있고 개인이 만든 사설 도서관도 있지만, 마을 단위 도서관은 거의 없다. 물론 농사일이 바쁜데 누가 도서관을 이용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고, 아이들도 없는데 웬 도서관 타령이냐고도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도서관을 지어도 이용할 사람들이 적은데 말이다. 예산도, 계획도 없으니 그냥 ‘도서관 없는 동네’다. 그게 현실이다. 

역발상 전주, ‘도서관 여행’으로 관광 상품화

역발상이 필요하다. 기초단체 단위의 도서관을 관광 상품화하고 마을엔 마을회관이나 어르신 휴게공간을 미니 도서관으로 꾸미는 방법이다. 전국 최초로 도서관 콘텐츠를 관광프로그램으로 만든 전북 전주의 ‘도서관 여행’은 성공 모델이다. 도서관 여행은 전주에 있는 특화 도서관 9곳과 시립도서관 2곳 등 11곳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11곳이 인기 명소가 되면서 책 읽는 전주 주민의 이미지를 전국에 알리고 있다. 

2021년 7월 시작한 전주의 ‘도서관 여행’은 특이하다.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데 2023년은 12월 16일까지 운영한다. 여행은 도서관 4~5개를 둘러보는 ‘구석구석 하루코스’와 3개 도서관을 방문하는 ‘쉬엄쉬엄 반일코스’가 있다. 전국 유일하게 도서관 여행해설사도 두고 있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전주에 오면 전주비빔밥을 먹고 싶듯 전주에 오면 방문하고 싶은 여행의 주요 목적지로 도서관 여행을 기획한 것이다.

전주 도서관 여행의 상시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1571명(123회)이 참여했다(11월 기준). 기관 대상 프로그램에도 717명(34개 기관)이 동참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두 번 이상 참여한 이들도 전체 여행자의 23%나 됐다. 비결은 도서관마다 책과 문화와 전통의 향기를 차별화한 데 있다. 예를 보자. 2019년 문을 연 꽃심도서관은 벽과 문턱이 없는 개방형 창의도서관이다. 2020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과 생활 SOC 우수사례 공모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전주비빔밥처럼 전주 도서관 여행 인기몰이  

산속(건지산)에 있는 ‘숲속작은도서관’은 독서와 생태 프로그램을 결합했고, 삼천도서관은 1층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놀이터가 나오도록 했다. 조부모나 부모가 아이들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생태 체험과 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전주시청은 내친김에 시청 건물의 로비를 ‘책기둥 도서관’으로 바꿨다. 딱딱한 관청 이미지를 한 번에 날려버린 것이다. 전주비빔밥 이미지가 전주 도서관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천지역은 도서관 인프라가 열악하다. 더구나 인천에 있는 도서관은 강화군민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학교 도서관이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 장서(藏書) 수는 전국 평균 이하이고 사서(司書)도 절반이나 공석이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올해 교육 목표로 ‘읽기·걷기·쓰기’를 제시했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천교육청의 정책이 적용되는 강화군에서도 ‘읽기·걷기·쓰기’ 구호가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강화는 역사의 고향, 도서관 테마 여행 구상을

강화군은 역사의 고향이다. 가는 곳, 발길 닿는 곳에서 역사의 숨결이 생동한다. 그러니 도서관과 박물관을 역사 관광 테마로 엮는 발상이 필요하다. 강화도서관, 내가 도서관, 지혜의숲 도서관 등 3대 공공도서관을 ‘강화 테마여행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구상이 필요하다. 여기에 길상 작은도서관, 교동 작은도서관, 하점 작은도서관, 화도 작은도서관도 연계하면 금상첨화다. 도서관별 테마를 면의 특성에 맞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강화 올레길을 따라 마을 단위의 ‘미니 도서관’을 만들어도 아기자기한 테마가 될 수 있다. 동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 미니 책방을 조성해 주민의 ‘지식 나눔 터’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언제든지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처럼 손주를 데리고 와서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그게 저출생 고령화 사회의 작은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강화발 ‘도서관 테마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해 2천만 명이 찾는 강화를 새로운 문화 성지(聖地)로 만들 아이템은 충분하다. 전주보다 강화가 훨씬 유리하다. 강화군청 공무원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마을 미니 도서관은 매력적일 수 있다. 긴긴 겨울, 어르신들은 따뜻한 마을회관을 찾을 것이다. 어르신들이 책장을 넘기는 모습,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을회관에 미니 도서관을 만들어보자. 책 읽는 강화의 소박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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