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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반나절’은 몇 시간일까?

작성일 : 2023.12.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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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시계가 없던 옛날 우리 조상들은 시간 기준을 해나 달, 밥 먹는 때, 또는 닭 울음 등 변함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에 의존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보통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먹은 뒤 논밭으로 나가 일하다 중간에 새참을 먹고 점심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점심을 먹곤 다시 일터로 나가 오후 새참을 먹고 저녁 시간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농사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이 중요하다. 그래서 해가 지면 “하루가 다 갔다”는 표현을 쓴다.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 뜨는 시간을 오전 6시, 해 지는 시간을 오후 6시로 보면 조상들이 보는 하루는 대략 12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하루’는 ‘날’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날’도 우리 조상의 개념으로는 12시간이다.

‘날’을 반으로 끊은 것이 ‘나절’이다. 그래서 ‘날+절(切)’의 ‘날절’에서 ‘ㄹ’이 탈락하고 ‘나절’이 됐다는 풀이가 맞게 느껴진다. 따라서 ‘한나절’은 6시간 정도로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점심 먹고 저녁때까지가 각각 한나절이다.

‘한나절’의 반을 자른 ‘반나절’은 3시간 정도로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 돌아온다. 먹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아침부터 새참까지, 새참부터 점심까지, 점심부터 새참까지, 새참부터 저녁까지로 하루에 네 번이 반나절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쉽다. 지금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한나절’ ‘반나절’ 정확한 시간 개념 없어져 

과거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풀이돼 있어 오해하거나 헷갈릴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1년 국립국어원은 언어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한나절’의 의미에 ‘하루낮 전체’라는 내용을 추가한다. 그리고 ‘반나절’은 ‘한나절의 반’ 또는 ‘하룻낮의 반’이라고 풀이한다. 여기에서 대혼란이 발생한다.

‘한나절’은 기존처럼 6시간도 되지만 하룻낮 전체인 12시간도 된다. 그리고 ‘반나절’은 3시간도 되고, 6시간도 된다. KTX가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생활권은 차를 타고 가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포함하므로 왕복 5~6시간 정도의 거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KTX가 얘기하는 ‘반나절’은 6시간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나절과 한나절·반나절이 모두 6시간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셋이 동의어가 된다. 이렇게 의미가 확장되고 중첩된다면 ‘한나절’ ‘반나절’은 시간 개념으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려면 ‘한나절’ 대신 6시간·12시간, ‘반나절’ 대신 3시간·6시간 등의 표현을 써야 한다. 

일반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현실을 사전에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온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절’ ‘한나절’ ‘반나절’이란 용어의 의미가 확장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이들이 정확한 시간 개념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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