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11.30 18:58 수정일 : 2023.11.30 19:08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 위치한 순경태후의 고려 가릉. <사진=바른언론>
강화에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칭호가 생길 정도로 과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역사문화 유산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몽골 항쟁의 시기 수도였던 강화만의 지역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4기의 고려왕릉이다. 이번 호에서는 양도면 능내리에 위치한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김씨의 능인 ‘가릉’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화에 존재하는 고려왕릉이라는 호칭은 강화 석릉(江華 碩陵), 강화 곤릉(江華 坤陵), 강화 홍릉(江華 洪陵), 강화 가릉(江華 嘉陵) 등 4기의 고분을 일컷는 말이다. 현재 강화 능내리 석실분은 가릉 바로 옆에 위치해 고려시대 왕이나 왕후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아직 고분의 주인을 밝혀내진 못했다.
대부분의 사적들이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통해 많은 아픔을 겪어 없어지긴 했지만 유독 고려왕릉은 온전한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구조적으로 석회를 두껍게 바른 조선왕릉이나 돌무지가 무덤을 보호하는 신라왕릉에 비해, 고려왕릉은 도굴 방어 장치가 없는 돌방 구조로 이루어져 도굴 피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귀족정치 시대였던 고려의 왕릉은 고려청자 같은 사치품을 많이 부장했기 때문에 더욱 도굴꾼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강화 가릉을 알려주는 안내석으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 QR코드와 외국인들에게도 설명이 가능한 음성 안내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사진=바른언론>
양도면 능내리 산16-2번지에 위치한 고려 가릉은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1222-1237)의 능으로 사적 제370호로 지정됐다.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는 생애는 짧지만 여러 가지 시호을 가졌다. 고종 22년 원종이 태자가 되면서 태자비인 경목현비(敬穆賢妃)라는 호칭을 사용하였고, 원종의 왕위에 오르면서 정순왕후(靜順王后)가 됐고 후에 아들인 충렬왕이 보위에 오르자 순경태후라는 시호를 갖게 됐다. 순경태후는 충렬왕을 낳고 이듬해인 1237년, 1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당시 고종의 신임을 받던 김약선의 딸이고 무신정권 최고의 권력자 최우의 외손녀로 상당한 권력의 집안이었다.
강화 가릉은 강화 진강산(해발443m)에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가릉의 남서쪽은 원래 바다와 접하는 가릉포(嘉陵浦)가 있었다. 가릉포는 마니산과 진강산 사이에 존재했었고 과거 가릉은 진강산에서 마니산을 바라보는 강가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화 가릉의 능역은 가로 11m, 세로 14m의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인 개경의 왕릉과 비교해 형식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3단 묘역의 구획이 이루어져 있다. 봉분은 지름 7.6m, 높이 2.5m로 규모다. 하지만 강화에 있는 고려왕릉과 차이를 볼 수 있는 것은 2.55m, 세로 1.68m, 높이 1.78m 규모의 석실이 존재한다. 봉분 북동쪽과 북서쪽 모서리에 석수(石獸)가 있으며, 석실 전면에 석인상이 석실을 중심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가릉에는 강화의 다른 고려왕릉과 다르게 석실이 존재하나 현재 보수정비공사로 인해 석실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없다. <사진=바른언론>
현재 가릉은 올해 9월부터 보수정비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석실의 내부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또한 가릉으로 가는 진입로도 관광객들에게 새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공사를 진행중이다.
가릉은 능내리 석실분이 함께 있으며, 주변 석릉 같은 고려왕릉이 있어 강화나들길 제 3코스(온수공영주차장 → 성공회온수성당 → 길정저수지 → 이규보모 → 석릉 → 가릉)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가릉에는 강화군에서 만들어진 공영주차장이 있어 트레킹 코스의 시작점이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현재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고려시대의 역사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난만큼 새로운 강화 가릉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따뜻한 봄내음과 함께 강화 역사 탐방 코스를 기획하고 답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정수 기자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