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거시기’는 오묘하면서도 유용한 말

작성일 : 2023.11.08 10:34

카카오톡 라인 밴드 트위터 페이스북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남용하면 의사소통 어렵게 할 수도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황산벌’에는 대화 중에 ‘거시기’란 말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백제 군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거시기’란 말을 한다. 백제의 의자왕이나 계백 장군도 ‘거시기’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에서 ‘거시기’는 백제의 상징이 됐다. 이것은 ‘거시기’를 백제어, 즉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방언)로 간주한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거시기’는 백제어, 즉 전라도 사투리가 맞을까? 당시에는 그곳에서만 사용됐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두루 쓰이면서 지금은 표준어가 됐다. 그러니까 ‘거시기’란 말은 지금은 지역을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쓰이는 말이 됐다.

‘거시기’는 직접 말하기 곤란할 때 유용

‘거시기’는 참으로 묘한 말이다. ‘거시기’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조정 회의에 백사(白沙) 이항복이 늦게 나타나자 한 대신이 나무랐다. 그러자 이항복이 설명했다.

“오는 길에 기가 막힌 구경거리가 있어서 늦었네. 글쎄 내시와 중이 붙어 대판 싸우는데, 내시는 중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중은 내시의 거시기를 잡고 늘어지는데 참 가관이더구만.” 듣고 있던 대신이 말했다. “이 사람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이항복이 되받았다. “우리가 모여서 늘 하는 일이 이런 탁상공론이 아닌가.” 이처럼 ‘거시기’는 직접 말하기 곤란한 부분을 지칭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뜻이 없으면서도 정확하게 의사 전달

‘거시기’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쓰인다. “저, 거시기 있잖아. 그 만날 코 질질 흘리던 애, 걔 말이야”가 이런 경우다.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도 사용된다. “저, 좀 거시기 합니다만, 부탁 좀 하나 들어 주시겠습니까?”가 이런 예다.

국어학자들은 ‘거시기’에 대해 “확실한 뜻을 갖지 못하면서도 서로의 뜻을 가장 정확히 주고 받을 수 있는 말”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아마도 ‘거시기’는 확실한 뜻이 없으면서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통해 상대가 무슨 의미로 이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는 오묘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거시기’의 어원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것’과 뿌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즐겨 쓰는 지역이 있지만 어디에서나 두루 쓰는 말이다. 맞춤법은 ‘거시키’ 발음은 버리고 ‘거시기’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거시기’ ‘머시기’ ‘무시기’도 쓰여

이렇듯 ‘거시기’는 확실한 뜻이 없는 단어이면서도 때론 정확히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묘한 말이다. 하지만 남용하면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는 양면성이 있다. 비슷한 것으로 ‘무엇’을 뜻하는 방언 ‘머시기’나 ‘무시기’가 있다.

“어이, 거시기. 요즘 거시기가 어렵다는데 어떻게 거시기는 잘돼 가냐?”
“무시기 소리여. 참 거시기 하네.”

카카오톡 라인 밴드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