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11.08 10:32
<김흥규 인하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10월 초 친한 교수로부터 도심의 고층 아파트 옆 황금빛 들판의 가을 사진 13점을 카카오톡으로 받았다. 알알이 영글어 가는 벼이삭과 열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양한 색깔의 꽃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화다.
한편 이런 경험도 있었다. 전기톱으로 가로수의 모든 가지를 다 잘라내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가지치기’ 작업이라는 명분 아래 나무에 대한 잔인한 ‘폭력’으로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아 전봇대처럼 몸통만 남은 나무와 잘려 떨어진 푸른 잎 가지들을 카메라에 담은 후 주변으로 옮겨 벤치에 앉았다. 가로수의 수난을 목격하고 보니 문득 두 사람 생각이 떠오른다.
먼저 식물을 가장 많이 주제로 다루었고 나무 중에서도 잎이 다 떨어진 한겨울의 나목(裸木)을 주로 화폭에 담았던 박수근 화백, 그리고 마흔의 나이에 소설 ‘나목’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박완서 작가다.
두 분은 나뭇가지가 잘려 버리고 상처 난 몸뚱이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해야 할 가로수의 아픔에 대해 어떻게 화폭에 옮기고 글로 표현했을까?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이 시점에서 냉정한 자세로 나무의 생명체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한다.
첫째, 나무에게 가을은 어떤 의미이며, 인간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가을은 모든 나무들이 가장 살맛을 느끼는 계절이다. 초목들에겐 ‘컬러 올림픽’이요 개성미와 정체성을 겨루고 한 해를 마감하는 식물들의 ‘초대 국전(國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숲속으로 가면 천혜(天惠)의 보약(천연 살균제)과 숲속 미생물의 항암 및 항생제 작용을 통해 신체적 심리·정신적 문제에 치유 효과를 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인간 모두는 수목들이 베푸는 무한한 선물의 수혜자로서 그들이 베풀어 주는 황홀한 무대의 관객으로서 환호하면서 의미를 만끽하면 된다. 그런데 전기톱을 들이대다니 말이 되는가.
둘째, 톱질을 하는 그 사람은 ‘나무권리 선언’을 읽기나 했을까?
‘나무권리 선언’은 전체 7개 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중 네 가지 조항에 주목해야 한다.
제1조, 나무는 한 생명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태어난다.
제3조,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한다.
제5조,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제7조,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한다.
셋째, 나무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나무의 성장 방식과 존재 이유, 그 많은 장점을 알고나 있는가?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의 흡수의 일등 공신이 나무다. 또 큰 잎은 소음을 흡수하고, 여름의 더운 공기와 도시의 열섬현상을 크게 감소시킨다. 오염된 환경에는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지구 환경 재앙을 막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다 큰 성목(成木)의 모든 가지를 10월에 다 자르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 한 전문가는 ‘가로수 47그루는 경유차 한 대 1년 배출 미세먼지를 잡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미국 환경보호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80년대 초 저서 ‘침묵의 봄’에서 환경파괴와 지구의 재앙을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일생에 필요한 산소를 얻기 위해 한 사람이 5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전기톱 행태는 가지치기의 목적인 수형조절, 미관의 향상, 채광과 통풍을 통한 병충해 방지, 전봇대 피해 예방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가지치기 대상의 기준인 죽거나 병든 가지, 쇠약한 가지, 겹가지, 빽빽한 가지, 불균형한 가지, 나쁜 가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더욱이 타이밍도 맞지 않다. 나무로서의 유익한 역할을 대부분 끝나는 12월 초가 적기가 아닐까. 전문적 검토가 요구된다.
넷째,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피터 톰킨스와 크리스토퍼 버드의 저서 ‘식물의 정신세계’를 수목 관련의 직업 종사자들은 읽기나 했을까?
“가장 위대한 도서관은 자연”이라고 예찬한 헤르만 헤세의 나무에 관한 에세이 18편과 시(詩) 21편도 지구 환경의 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식물도 생각하고 느낀다는 ‘식물의 정신세계’에서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自虐) 끝에 시들어 버린다.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떨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死色)이 된다.” “예, 선인장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속삭이자마자 선인장이 즉각 응답을 했고, 제비꽃은 바흐와 모차르트, 재즈를 좋아하고 록 음악을 싫어한다. 장바구니 속의 야채들은 곧 뜨거운 물에 익혀 지거나 불에 구워질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비명을 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정 어린 말과 칭찬은 커녕 모든 가지를 잃고 몸통만 남은 나무의 비명과 울부짖음은 누가 예방 치유해야 하는가.
과연 ‘환경 재앙의 주역들’은 누구인가. 진정 전기톱이 다가갈 폭목(暴木)은 누구이며, 가지치기의 대상인 나쁜 가지는 어떤 존재들인가. 인간에게 뇌와 입, 눈과 손이 병들면 큰 재앙이 된다.
“매력적인 입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고 /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우리가 두 손을 갖고 있음은 한 손은 나 자신을 위해,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이다 / 서로를 안아 주라고 신(神)은 우리에게 두 팔을 주었다.”
책 제목도 품격이 있는 탤런트 김혜자의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의 첫 페이지에 실린 오드리 햅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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