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10.10 17:10 수정일 : 2023.10.10 17:13
강화도 만세운동 지도자 중에는 눈길을 끄는 이가 있다. 바로 석모도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안득 지사다. 이안득 지사는 일제에 체포될 당시 19세로 출생지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로 돼있다. 이 지사는 석모도에서 유배형을 받고 거주 제한 상태에 있던 상황에서도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일제가 남긴 자료를 보면 이 지사는 1900년 12월 25일생으로 본적과 주소는 삼산면 석모리로 나오지만 출생지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로 돼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인 셈이다.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그는 일제에 적발돼 19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에서 1천㎞나 떨어진 강화군 석모도로 유배를 왔다.
이듬해 우리나라에서는 3·1 운동이 일어났고, 이안득 지사는 유배지의 마을에서도 아이들을 이끌고 뒷산에 올라 횃불을 피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제는 이 지사가 4월 7일 밤 석모리 주민 10여 명과 함께 당산(堂山) 꼭대기에 올라 불을 지피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해 치안을 방해했다며 보안법을 적용해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고, 경성복심법원은 같은 해 8월 공소를 기각했다. 이 지사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20년 4월 28일 출소했다.
판결문에는 “이안득은 예전 시베리아에서 배일사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거주 제한 처분을 받았다. 대정 7년(1918년) 9월 2일 이후 현주소(=길상면 선두리)로 이주한 자로 일한합병 당시부터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찬동해 정치변혁의 목적을 가지고 4월 7일 오후 8시경 마을 당산에 올라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했다”고 돼있다.
하지만 독립운동과 관련한 이 지사의 기록은 불명확하다. 2016년 발간한 ‘신편 강화사’에는 그가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거주제한 처분을 받았다’며 출신지가 다르게 기록돼 있다.
같은 해 인천시가 펴낸 ‘인천시사’에는 ‘이안득의 주도로 삼산면 석모리에서 십수명이 산정에 올라 봉화를 피우고 독립만세운동을 불렀다’고만 돼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찾아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올려놓은 자료에는 그의 이름이 ‘이안덕(李安德)’이라고 명시돼 있다.
100년이나 흘렀지만 그의 이름이나 행적 등에 대해 아직 명확히 밝혀진 부분이 없는 셈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배 중임에도 독립의 횃불을 기꺼이 들었던 이안득 지사. 우리에게는 마땅히 이안득 지사의 행적과 정신을 재조명하고 그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안득 지사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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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득(李安得) 12월 25일생(20세) 위에 대한 보안법 위반 피고 사건에 대하여 조선총독부 검사 옥명우언(玉名友彦) 관여로 심리 판결함이 다음과 같다. 주문 이유 법률에 비추건대, 본건은 범죄 후의 법령으로 형이 변경되었으므로 형법 제6조·제8조·제10조에 따라 신·구 양법의 형을 비교 대조하여 그 경한 것을 적용할 것이다. 구법에 있어서는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에 해당하고, 신법에 있어서는 대정 8년 제령 제7호 제1조에 해당하므로 이 경한 구법인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의 규정을 적용하여 소정형 중 징역형을 선택, 그 형기 범위내에서 처단할 것이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

▲이안득 지사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이안득 지사 조서.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지현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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