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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작성일 : 2023.09.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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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한가위는 민족 최대 명절… 가장 풍요로운 때
‘한가위’는 ‘한가운데’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을 뒤로 한 채 어느덧 맑은 하늘 아래 가을이 들어서고 한가위가 다가왔다. 고향과 부모님을 찾아 먼 길을 나서고, 헤어졌던 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는 등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며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울 때다. ‘한가위’는 추석(秋夕)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이 길쌈(실을 내 옷감을 짜는 일)을 장려하기 위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패로 가른 뒤 7월 16일부터 한 달간 베를 짜게 했다고 한다. 8월 보름이 되면 어느 쪽이 많이 짰는지를 가려지는 편이 음식과 과일·술 등을 장만, 이긴 편에 사례하고 둘러앉아 함께 먹으면서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고 한다. 

추석은 ‘한가위’보다 후대에 생긴 말

‘가배’는 ‘가운데’를 뜻하는 우리말 ‘가부·가뷔’를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옛 신라 지역이었던 영남에서 지금도 ‘가운데’를 ‘가분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하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가부·가뷔’가 변해 ‘가위’가 됐고, 정(正) 중심이나 ‘으뜸’ ‘크다’ 등의 뜻을 가진 ‘한’과 결합해 ‘한가위’가 됐다고 한다.

추석·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란 명칭은 ‘한가위’보다 훨씬 후대에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한자가 전래돼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仲秋)·추중(秋仲)이니, 칠석(七夕)·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중추(仲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유만공(柳晩恭)이 쓴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우리 세시 풍속을 소재로 지은 시 200여 수가 담겨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누렇게 익은 들녘 풍작을 감사하니, 모든 것이 새로 난 맛난 것들, 다만 원컨대 한 해 먹을 것,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黃雲野色賽晴佳, 秋熟嘗新百物皆, 但願一年平日供, 無加無減 似嘉俳)는 시가 있다고 한다.

“옷은 시집 올 때, 음식은 한가위처럼”

한가위에는 햇곡식과 햇과일이 있어 어느 때보다 풍족하므로 더 바랄 게 없다는 뜻이다.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란 속담도 있다. 옷은 시집올 때 가장 잘 입을 수 있고, 음식은 한가위에 가장 잘 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1년 중 가장 풍요로울 때 조상께 차례를 지내는 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고물가로 삶이 다소 팍팍해지긴 했지만, 고향을 찾아 나서고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가슴이 푸근해진다. 올해는 엿새에 이르는 긴 연휴로 더욱 여유가 있다. “한가위 연휴 날짜가 더도 덜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가위 보름달에 소망하는 일들이 빠짐없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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