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9.11 20:15 수정일 : 2023.09.11 20:18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서울역 가장 높아… ‘서울 올라간다’ 표현
실제 국내서 가장 높은 역은 태백선 추전역
난센스 문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은 어디일까? 강원도의 어느 역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답은 서울역이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니까 말이다. 강원도에서도, 부산에서도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서울로 내려간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은 태백선 추전역(해발 855m)이다.
추전역이 분명히 해발 고도상 가장 높은 역이지만 아마 그곳에서도 서울로 내려간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추전역은 현재 여객업무가 중단됐다. 그러나 추전역은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설경이 특히 아름다워 1998년 시작된 환상선 눈꽃열차가 도착하는 첫 번째 명소이기도 하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동화 나라를 찾는 사람이 늘면서 추전역은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한양)은 높은 곳을 상징하는 존재
그렇다면 왜 너도 나도 서울(해발 약 50m)로 올라간다고 하는 것일까? 왕조시대 모든 중심은 수도인 서울(한양)이었다. 서울은 절대 권력인 왕이 거주하는 곳일 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한 나라의 요소들이 집중되는 곳이다. 백성들에게는 높은 곳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어디에서나 서울로 갈 때는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이 자연스레 입에 뱄다. 반대의 경우엔 “시골로 내려간다”고 한다.
위와 아래의 구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선배와 후배가 위아래가 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이 위아래가 되기도 하지만 고학년과 저학년이 위아래가 되기도 한다. 어른과 아이도 위아래로 구분된다. 심지어는 물건에도 위아래가 있다. 가치나 값을 따졌을 때 상품과 하품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좋고 나쁜 것, 진짜와 가짜(짝퉁) 등도 위아래로 구분된다.
이렇게 위아래가 구분되는 곳에서는 대체로 ‘올라간다’는 말이 성립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신분이 올라가거나 고위직으로 이동할 때도 그렇다. 이 역시 “서울로 올라간다”처럼 지형적인, 물리적인 높이가 아니라 상징적 높이를 뜻하는 것이다. 한자어로도 상경(上京)이란 말이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하경(下京) 또는 낙향(落鄕)이라고 한다. 왕조시대 서울은 높은 곳, 지방은 낮은 곳이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상행선・하행선 등 서울이 중심
이러한 시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 상행선・하행선이란 말을 사용한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상행선은 부산에서 서울 방향, 하행선은 서울에서 부산 방향이다. 주말이나 명절이 되면 “고속도로 하행선이 꽉 막혀 있다”, “일요일에는 오전부터 상행선이 막힐 것으로 예상된다” 등처럼 쓰인다. 이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서울은 정치·경제·인구 등 국가의 모든 요소가 집중된 곳으로 그 중요성이 여전하므로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은 아직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방자치 시대 정부기관이나 교육기관 등이 분산 배치되고 행정수도인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가 생겼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서의 서울의 지위는 여전하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은 서울역이고 오늘도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가고 서울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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