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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우리말에 스며든 영어식 표현

작성일 : 2023.08.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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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영어를 그대로 번역한 듯한 표현 많이 쓰이고 있어
적절한 단어로 바꾸거나 문장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

◆’~가지다(갖다) 남용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노래 가운데는 “I have a dream”이란 것이 있다. 여러분은 이 “I have a dream”을 어떻게 번역하겠는가. 많은 사람이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또는 “나는 꿈을 갖고 있다”로 옮길 것이라 생각된다. 영어의 ‘have’를 ‘가지다’ 또는 그 준말인 ‘갖다’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우리말에서는 ‘있다’고 말하지 ‘가졌다’고 하지 않는다. 사물을 소유로 바라보기보다 존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나에겐 꿈이 있다” “내게는 꿈이 있다” 등으로 하는 것이 우리식 표현이다.

“나는 세 명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말해 보라”도 영어의 ‘have’를 그대로 번역한 투로 “나에겐 세 명의 가족이 있다” “내겐 친구가 많이 있다(많다)”  “좋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해 보라”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SNS 댓글 등에서 많이 쓰이는 “좋은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는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는 “Have a good time”을 그대로 번역한 투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우리식 표현이다. 

‘기자회견을 갖다’ ‘회담을 갖다’ ‘집회를 갖다’ ‘간담회를 갖다’ 등은 우리말에서 ‘열다’ ‘하다’ ‘개최하다’ 등 다른 단어가 다양하게 어울리는 자리에 ‘갖다’를 마구 쓴 경우다. “기자회견을 열다” “회담을 개최하다” ‘집회를 열다’ ‘간담회를 하다’ 등이 적절한 말이다. 

이처럼 ‘가지다(갖다)’를 남용함으로써 정상적인 우리말 표현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있다’ ‘열다’ ‘하다’ ‘개최하다’ ‘보내다’ 등 다른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쓰거나 우리말답게 문장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수를 나타내는 ‘들’자 남용

사물을 복수로 만들 때 쓰이는 접미사 ‘~들’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말에서는 이야기 앞뒤의 흐름으로 복수임을 짐작할 수 있거나 문장 속에 있는 다른 어휘로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 ‘들’을 붙이지 않는다. 복수에 꼬박꼬박 ‘들’을 붙여 쓰는 것은 영어식 표현이다.

“먹자골목에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를 예로 들면 ‘늘어서 있다’는 서술어로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음식점’에 ‘들’을 붙일 필요가 없다. “먹자골목에는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는 표현으로 충분하다.

“사고로 여러 사람들이 다쳤다”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에서는 수식하는 ‘여러’와 ‘많은’이 구체적으로 수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들’을 빼고 “사고로 여러 사람이 다쳤다” “행사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들’을 붙이는 데 익숙하다 보니 “상승하는 수증기들이 주변의 낮은 공기들 때문에 냉각되고 서서히 뭉치면서 구름들이 생긴다”에서처럼 셀 수 없는 명사에까지 ‘들’을 붙이는 예가 많다. “상승하는 수증기가 주변의 낮은 공기 때문에 냉각되고 서서히 뭉치면서 구름이 생긴다”로 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들’을 사용하면 ‘들’이 군더더기로 작용함으로써 문장의 간결성이 떨어지고 읽기에도 불편해지므로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의 진행형을 닮은 ‘~중이다’

우리말에서는 영어처럼 특별히 진행형이 있는 게 아니다. 상태나 진행을 뜻하는 ‘있다’가 ‘~고 있다’ 형태로 진행형을 대신한다. ‘가다’를 예로 들면 ‘가고 있었다(과거진행)-가고 있다(현재진행)-가고 있겠다(미래진행)’가 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체계를 무시하고 영어의 ‘~ing’를 공부하면서 배운 ‘~중이다’가 마구 쓰이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 중이다” “실질적 혜택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무의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행사 참가를 고려 중이다” “실패 원인을 파악 중이다”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기다리는 중이다” 등과 같이 서술어가 ‘~중이다’ 투성이다.

우리말의 ‘~중’은 ‘영웅 중의 영웅’처럼 ‘~가운데’, ‘수업 중, 공부 중, 그러던 중’처럼 ‘~하는 동안’, ‘임신 중’처럼 ‘어떤 상태에 있는 동안’ 등의 뜻으로 쓰일 때 잘 어울리는 말이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상태’나 ‘~동안’을 나타내는 “수업 중이다” “공부 중이다” “임신 중이다” “식사 중이다” 등의 표현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은 ‘~하고 있다’가 적절하다. ‘계획 중이다→계획하고 있다’ ‘검토 중이다→검토하고 있다’ ‘추진 중이다→추진하고 있다’ ‘조사 중이다→조사하고 있다’ ‘고려 중이다→고려하고 있다’ ‘출판을 생각 중이다→출판을 생각하고 있다(→출판할 생각이다)’ 등이 정상적인 우리말 표현 방식이다.

‘~중이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계획 중이다”→) “계획하는 중이다” “계획하고 있는 중이다” 등처럼 영어의 진행형을 더욱 흉내 낸 듯한 표현도 많이 쓰이고 있다. 모두 “계획하고 있다”가 정상적인 말이다. “원인을 파악 중에 있다”와 같이 ‘~중에 있다’는 어설픈 표현도 흔히 사용된다.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가 적절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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