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8.14 16:20
강화에는 유교·불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유명한 곳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이에 강화의 종교유산을 소개하고 널리 알리고자 본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번 호는 하점면 장정리에 위치한 오층석탑 및 봉은사지다.
▲장정리 오층석탑. <사진=바른언론>
장정리 오층석탑(長井里五層石塔)은 봉은사지(奉恩寺址) 오층석탑으로도 불린다.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시대 국가사찰로 고종19년(1232)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 때 함께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당초 탑은 쓰러져 파손돼있었는데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보수 재건했다.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적지 않아 현재는 3층 이상의 옥신(屋身)과 5층 옥개석, 그리고 상륜부재가 모두 없다. 낮은 언덕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로 그 규모를 알 수가 없으며, 가람을 배치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석탑이 서 있던 위치는 언덕에서 파생된 지맥(支脈) 위라는 점이 특이하다.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방형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 석탑으로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2면은 우주가 있는 판석이고 다른 2면은 면석만으로 되었고, 탱주(撑柱: 받침기둥)는 모각되지 않았다.
갑석(甲石)은 두꺼운 1장의 판석을 덮고 있는데 아랫면에는 부연(副椽: 탑기단의 갑석하부에 두른 쇠시리)도 없다. 윗면은 약간의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1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초층 옥신이 두 개의 석재로 이루어졌고, 초층 옥개석 이상은 옥신과 옥개석이 모두 1장씩으로 되었다. 초층 옥신은 크기가 다른 2매석에 큼직한 우주형(隅柱形)이 모각되었다. 2층 옥신은 초층에 비해 높이와 넓이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우주형은 형식적으로 표시됐다.
옥개석은 비교적 평박한 편으로, 아랫면의 받침은 초층이 4단이고 2층부터 4층까지는 3단으로 줄어들었다. 추녀 밑은 직선이나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반곡(反曲)을 보였고, 낙수면은 반곡 없이 흘렀으며, 전각(轉角)의 반전은 매우 작은 편이다.
2층 이상의 옥개석도 양식은 같으나 크기에 있어서는 체감되었으며, 각 층에 파손이 심하여 전각부는 거의 대부분이 깨어져 있다. 상륜부의 부재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봉은사지(奉恩寺址). <사진=바른언론>
봉은사는 고려 광종 2년(951)에 창건되어 태조 왕건의 진영을 보관한 국가사찰이었는데,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강화로 옮기면서 개성 봉은사와 같은 이름의 절을 이곳에 세웠다고 전한다. 고종 36년에서 46년(1249~1259)까지 매해 2월 연등회를 개최하였으며, 고종에 이어 등극한 원종 역시 7차례 연등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폐사의 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사지에는 앞서 살펴본 오층석탑과 사각형의 우물이 있다.
한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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