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7.24 17:13 수정일 : 2023.07.24 17:19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큰 사고는 갑자기 발생 않고 징조 반복
1: 29: 300 하인리히 법칙 어디든 노려
극한 폭우도 네 탓, 행정 책임 면피 급급
저질 정치권, 납세자인 국민이 심판해야
‘하인리히 법칙(法則)’이라는 게 있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 보험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Heinrich)는 7만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의 발견은 『산업재해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에 실렸다. 산업안전사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 : 29 : 300 법칙’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만한 사건이 300번 정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1 : 29 : 300의 법칙’이라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은 우리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자신도 모르게 몸 곳곳이 조금 쑤셔 약을 먹거나 보건소 가긴 했는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 사회적 사건은 그런 일이 너무나 많다. 1995년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고, 2008년 이천냉동창고 화재참사 같은 참극이 그랬다. 사전에 전조가 있었는데 그런 시그널을 무시했다가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자연재해도 비슷하다. 매년 여름철만 되면 폭우와 태풍이 반복된다. 기후 온난화 등으로 자연재해는 전 세계적으로도 더 자주 발생하고 피해규모도 커지고 있다. 물론 인간이 알고도 불가항력으로 당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예방하고 사전에 대처를 잘 하면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역할, 정치와 행정의 기능은 그래서 중요하다.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도리 역시 ‘서번트 정신’이 기본이다. 사전 대비와 대책의 촘촘함이 선진국 척도 중 하나인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자연재해도 가볍지 않다. 당장 이번 여름엔 2011년(78명) 이후 12년 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었다. 집과 농토가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간 주민들의 황망함을 어떻게 표현하겠나. 곳곳에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충북 청주 오송 궁평지하차도에선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4명이 지하차도에 들이닥친 물에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가슴이 아리고 먹먹하다. 수사 상황을 보면 여기서도 하인리히 법칙이 작동하고 있었다.
주변의 제방도 문제였고, 하천 준설도 문제였고, 공무원들의 무사안일도 문제였고, 온갖 문제 투성이었다. 대형 참사가 자연의 심술만으로 발생한 게 아닌 것이다. 침수 사고의 원인인 미호강 관리 부실은 책임지겠다는 곳이 없다. ‘물 행정’의 주체가 얽히고설켜 있어서인지 책임 ‘핑퐁’이 도를 넘었다. 국민 입장에선 하천 관리주체가 대통령실인지, 국토교통부인지, 환경부인지, 도청인지, 시청인지, 구청인지, 면소무소인지, 경찰인지, 소방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납세자(tax payer)로서 자신들의 안전을 어떤 행정 주체이든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치단체, 경찰, 소방당국 어느 한 곳 하나 “제가 잘 못했다”고 하지 않는다. 파워게임에서 밀리지 않으려 하고 문책도 두렵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언행은 더 가관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5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또 목도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한 행동과 말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지하차도로 밀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다”고 말했다. 어이없다.
국민의힘 소속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이 공직자인 걸 잊었다. 폭우로 전국에 인명·재산 피해가 집중된 7월 15일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자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 떼처럼 덤벼든다. (주말 골프는) 십수 년 간 내가 했던 원칙이다”라며 되레 큰소리쳤다. 단순하게 골프 친 것 가지고 얘기하는 것인가. 당시 이웃 경북도엔 물난리가 났고 곳곳이 비상이었다. 이웃에 상(喪)이 있으면 동네 아이들도 웃고 떠들며 뛰어놀지 않는 게 예의인데 대선 후보까지 나왔던 단체장이 할 말인가. 참으로 답답한 대한민국 정치다.
더 한심한 것은 여야의 네 탓 공방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윤 대통령이 전화로 재난 대응을 지시한 이른바 ‘폰(phone)트롤타워’ 논란까지 소환하며 ‘재난 감수성 제로’라고 비난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국정과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또다시 ‘전(前) 정부 책임론’을 들먹였다. 문재인 정부가 물 관리 기능을 국토부에서 환경부 이관하고 태양광 정책의 실패 등이 겹쳐 이번 수해를 초래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재해까지 정쟁으로 몰고 가는 구태를 반복해야 하는가.
강화지역에는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치수(治水)가 잘 되는 천혜의 장점도 있지만, 군청을 중심으로 행정적으로 잘 대처한 덕분이기도 하다. 장마가 끝나면 병충해 예방과 취약지반 점검, 피해 농가 지원 등에 만전을 다해주길 바란다. 하인리히 법칙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강화군도 안심할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더 촘촘하게 군민의 안전을 살펴야 한다. 현장보다 더 강력한 행정은 없다. 공무원들이 현장을 살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하인리히의 경고 시그널이 수 백 번 울렸다.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됐다면 일찌감치 망했어야 할 정당, 퇴출당했어야 할 정치인이 한 가득이다. 그런데 살아남는다. 하인리히가 통곡할 일이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자질 없는 정치인을 내가 낸 세금으로 더 이상 먹여 살려선 안 된다. 유권자의 힘은 투표권에서 나온다. 이번 폭우를 둘러싼 정쟁(政爭)과 설화(舌禍)를 보면서 느낀 소회다.
필자 소개 양 영 유
언론인 학자다. 31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정책사회부장, 사회1부장, 행정국장, 사회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과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에서 연수했다. 1964년 양도면 출생. 양도초, 동광중, 선인고, 고려대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언론학(박사)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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