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7.24 17:11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주변에서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라 추측
지금도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사람 있어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도 어느덧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지금처럼 한창 더운 여름을 삼복(三伏)더위라고도 부른다. 삼복이란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11일이 초복이었고, 21일이 중복이었다. 복날은 일반적으로 열흘 간격으로 초복에서 말복까지 20일이 걸린다. 하지만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기도 하며 이는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올해가 바로 이 월복이 드는 해다. 올해 말복은 중복으로부터 20일 뒤인 8월 10일이다. 전 지구촌이 극심한 더위와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올여름이 길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삼복 기간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오는데 우리나라의 기후상 가장 더운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삼복더위’라는 단어가 이 시점에 사용되는 것은 유난히 이 시기의 날씨가 덥기 때문이다. 각급 학교·학원 등 교육기관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맞춰 여름방학을 실시하며 직장인들의 여름휴가도 이 시점에 몰린다.
삼복더위에는 보양식으로 이열치열 전통
삼복 기간에는 더위로 인해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지치기 십상이어서 예부터 먹는 것에 신경을 써 왔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고칼로리 영양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복날에는 주로 고기 요리를 먹었다. 고기 요리 가운데서도 열기를 돋게 하는 부재료를 이용한 국물 요리를 주로 섭취했다. 수분과 영양을 함께 보충하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요즘은 복날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삼계탕이 꼽히지만 과거에는 개장, 육개장, 민어, 장어, 추어탕, 설렁탕, 용봉탕, 전복죽, 흑염소, 메기매운탕 등 각종 보양식을 먹었다고 한다. 또한 팥죽을 먹기도 했는데 귀신을 몰아내고 더위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먹어 온 복날 보양식은 대부분 이열치열(以熱治熱)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열로써 열을 다스리는 것이다. 뜨거운 것을 먹으면서 땀을 흠뻑 냄으로써 더위를 물리치는 것이다.
복날은 ‘더위를 굴복시키는 날’이란 뜻
과거에는 대표적인 복날 음식이 개고기였다. 지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과거에는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주로 수육이나 개장국 형태로 개고기를 먹었다. 그렇다면 왜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생겼을까? ‘복날’의 ‘복(伏)’자가 ‘사람인(人)+개견(犬)’ 구조여서 혹시 복날 자체가 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영어에서도 복날을 ‘도그 데이스(dog days)’라 부른다. 이것을 보면 더욱 복날과 개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복날과 개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한자 ‘伏’은 사람 옆에서 개가 엎드린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엎드릴 복’ 또는 ‘굴복할 복’으로 읽힌다. 한여름 더울 때 찾아오는 절기로서의 ‘복날’도 ‘더위를 굴복시키는 날’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따르면 ‘복(伏)’은 서기제복(暑氣制伏), 즉 여름의 더운 기운(暑氣)을 제압 또는 굴복(制伏)시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며, 우리 궁중에서 복날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영어의 ‘dog days’는 시리우스 별자리와 관계
영어에서 복날을 ‘dog days’라 부르는 것은 별자리와 관계가 있다. 지구에서 8.7광년 떨어진 곳에 ‘시리우스(Sirius)’라는 별이 있는데, 큰개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별 중에 가장 밝은 별이다. 이 별은 삼복 때가 되면 태양과 함께 떠오르며, 한낮의 밝은 빛 속으로 숨어 버린다. 서양 사람들은 이 별의 열기가 태양과 합쳐지기 때문에 특히 덥다고 해서 별자리 이름을 따 이때를 ‘dog days’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개고기는 보통 개장국(개장)으로 요리를 해 먹는다. 개장국은 개고기(황구)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끓인 국이다.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먹는 풍속은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도 나온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기력 회복 등 개고기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옛날 주변에서 보양식으로 쓸 만한 것을 구하기에는 개고기가 손쉬웠기 때문에 개장국을 끓여 먹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도 개고기가 몸에 좋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개고기와 관련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
얼마 전에는 복날을 앞두고 개고기와 관련, 논쟁이 일기도 했다. 서울시의회가 ‘개·고양이 식용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하자 육견협회가 “생존권 위협”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조례안은 원산지와 유통처가 불명확한 개고기의 비위생적인 실태를 서울시가 집중적으로 단속하도록 하고, 개고기 취급 업체와 식품접객업소 등의 업종 변경을 유도하는 것이 골자다.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체에 최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행법상으로도 개고기 판매는 불법이다. 개는 축산법상으로는 가축으로 지정돼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 하지만 위생관리법상 개고기를 도축하거나 팔기 위한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즉 식용 가축이 아니라는 뜻이다. 개고기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먹을 것이 흔해 빠진 요즘 세상에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꼭 개고기를 먹어야 하느냐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개고기의 식용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쨌거나 요즘은 복날에 개고기 대신 삼계탕을 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복날이 되면 삼계탕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다. 삼계탕이 질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해신탕, 추어탕, 장어구이 등을 먹기도 한다. 삼복더위와 보양식은 예나 지금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삼복더위를 줄여 ‘복더위’라고 하며, 잘 쓰이지는 않지만 복달더위·삼복염천·삼복증염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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