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7.12 14:53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1.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깊은 협곡에서 독도법을 익히던 스위스 병사들이 갑작스런 폭설로 길을 잃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병사들은 며칠을 헤맸다. 기진맥진했고 식량은 바닥났다. 그때, 한 병사가 자기 배낭에서 지도를 발견했다. 병사들은 그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까운 마을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고 마침내 구조됐다. 구조대는 깜짝 놀랐다. 병사들이 생명 줄로 삼은 지도는 알프스 산맥이 아닌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 지도였다.
이 이야기는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밝혔던 실화(實話)다. 대니얼 교수는 “모든 일은 신중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고민만 하다가 결정을 못하고 시기를 놓치는 결정 장애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망설이는 것부터 말이다. 그런데 스위스 병사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적을 일궈냈다. 엉뚱한 지도가 병사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줬다. 지도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았고,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 걸었던 것이 생명을 구한 힘이 되었던 것이다.
결정 장애와 나르시시즘 행정은 부작용 커
#2.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출중한 외모를 가진 미소년이다. 어느 날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열병은 강렬했다. 샘물의 상대방을 흠모했다.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괴로워하던 미소년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다.
미소년의 그 강렬했던 자기애는 나르키소스 효과라고도 한다. 나르키소스 효과는 ‘아첨꾼의 거울’ 또는 ‘유혹자의 거울’이라고도 부른다. 독일의 정신 의학자 네케는 1899년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을 만든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영화배우보다 더 잘 생겼다며 황홀해 하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하면서도, 멋진 행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망상의 나르시시즘이다.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나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르시시즘에 빠져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행정은 외려 부작용만 부른다. 그만큼 나랏일은 어렵다. 더구나 주민을 위한 풀뿌리 행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The Prince)’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최악의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 아무 결정도 하지 않고 권력과 자리만 즐기다가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백성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리더의 인사는 중요… 인사의 기본원칙은 능력
리더가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려면 인사(人事)가 중요하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사로 보완하는 것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전쟁터에서 어느 장수를 선봉에 세워 적의 기선을 꺾을 것인가”하는 전술 자체가 인사의 기본 아닌가. 실력은 별로인데 사탕발림 잘 하는 장수에게 공 세울 기회를 주려 선봉에 세웠다가 패배하면 나라를 통째로 적에게 내어 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게 전쟁터인데 말이다.
인사의 기본원칙은 능력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장관을 발탁하는 기준도, 기업체 CEO가 임원을 선임하는 기준도, 자치단체장이 간부를 엄선하는 기준도 능력이어야 한다. 물론 능력만 보고 인성이나 리더십을 소홀히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능력에는 인성도, 리더십도 포함된다. 덕망이 있고 조직을 잘 이끄는 품격 있는 사람이 곧 능력 있는 사람이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같이 하는 것인 까닭이다. 능력은 그 과정에서 발휘하는 것이다.
자리만 탐하는 인사는 국정에 도움 안 돼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러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장·차관 인사와 대통령실 인사도 7월 들어 진행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결단할 때 결단하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의 리더십으로 조직을 잘 이끌 그런 인재를 원한다. 권력의 자리를 가문의 영광으로나 생각하고,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을 사람을 등용하면 국정에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인사를 늘 공격한다. 정치의 속성이다. 국민의 힘도 야당일 때 늘 여당인 민주당을 공격했다. 양측이 정도(正度)를 지켜야 하는데 선을 넘나든다. 왜 그런지 반추해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처럼 무책임한 것은 없다.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여야가 내로남불을 가리지 않는다. 인사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국민이 공감하는 일머리가 없다. 여전히 정치는 후진적이다.
정부만이 아니다. 자치단체 인사는 더 중요하다. 광역 자치단체보다도 기초자치단체는 더더욱 주민 친화형 인사가 필요하다. 주민을 현장에서 만나고 주민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분이 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주민의 애환을 함께하며 “나는 왜 공무원인가”를 늘 되새기는 사람이 지역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용기 있는 결단과 책임지는 행정이 중요하다. 국민은 그런 공직자를 원한다.
필자 소개 양 영 유
언론인 학자다. 31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정책사회부장, 사회1부장, 행정국장, 사회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과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에서 연수했다. 1964년 양도면 출생. 양도초, 동광중, 선인고, 고려대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언론학(박사)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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