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6.28 11:36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잘못된 사자성어 사용하는 경우 많아
문자 쓰려다 도리어 체면 깎이는 일
사자성어(四字成語)란 4개의 한자로 이뤄진 성어를 가리킨다. 사자성어는 교훈이나 비유, 상징 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일상 대화 속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적절한 비유가 되거나 사실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으므로 사자성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맞지 않는 사자성어를 사용해 체면을 구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비슷해 헷갈리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문자 쓰려다 오히려 체면이 깎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자성어의 정확한 뜻과 철자를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많이 쓰이면서도 흔히 틀리는 사자성어를 모아봤다.
◇야밤도주
돈 문제로 몰래 도망치거나 남녀가 사랑 때문에 부모 몰래 달아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도망을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밤에 도망을 가기 때문에 ‘야밤도주’가 맞는 표현으로 생각하기 쉽다. 인터넷을 보면 세 살던 사람이 야밤도주를 했다거나 업주가 월급을 떼어먹고 야밤도주했다는 등의 글이 올라 있다. 그러나 정확한 표기는 야반도주(夜半逃走)다. 여기에서 한자 반(半)은 ‘가운데’나 ‘한창’을 뜻하는 말로 ‘야반’은 밤이 깊은 때, 즉 한밤중을 의미한다.
◇산수갑산
험한 산골을 가리키는 말로 ‘산수갑산’이란 말을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뜻하는 말로도 ‘산수갑산’이란 말이 쓰인다. 산수(山水)가 산과 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말이 잘 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산수갑산’이란 이름의 체인점과 식당이 적지 않아 더욱 이것이 맞는 말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삼수갑산(三水甲山)이 바른 표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산골이라 이르던 삼수와 갑산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귀양지의 하나였다고 한다.
◇포복졸도
누군가가 갑자기 웃겨서 배를 움켜잡고 크게 웃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심하게 웃다 보면 배가 당겨 숨쉬기조차 힘들다. 이때는 정말 숨을 쉬지 못해 졸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이구, 나 죽네” “졸도하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포복졸도’가 맞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포복절도(抱腹絕倒)가 바른 표현이다. 여기에서 절도(絕倒)는 까무러쳐 넘어지는 것을 뜻하며, ‘포복절도’는 배를 그러안고 넘어질 정도로 몹시 웃는 것을 의미한다.
◇사면초과
얼마 전 유튜브를 시청하다 자막에서 ‘사면초과’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떤 상황을 설명하면서 화면 가득 ‘○○○ 사면초과’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를 보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체면이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면초과’라면 사면이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한도를 넘어섰다는 뜻으로 해석돼 일견 맞는 말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맞는 말이다.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랫소리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성대묘사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이 있다.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흉내 냄으로써 많은 인기를 끈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글을 보면 ‘성대묘사’라고 돼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묘사(描寫)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등을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것을 뜻하므로 ‘성대묘사’가 맞는 말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정확한 표기는 성대모사(聲帶模寫)다. 여기에서 ‘모사’는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는 것을 뜻한다. ‘성대모사’는 남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낸다는 점에서 ‘묘사’가 아니라 ‘모사’를 쓴다.
◇풍지박산
사업 실패 등 어떤 상황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있다. 또 다니는 회사가 부도가 나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무엇이 사방으로 날아가듯 뿔뿔이 흩어질 때 ‘풍지박산’이란 말을 쓰기 십상이다. 바람(風)이 불어 땅(地) 위의 모든 것이 흩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풍지박산’이 맞는 말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확한 표기는 풍비박산(風飛雹散)이다.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거나 흩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항장애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질병이 있다. 심리적 불안 상태나 발작이 반복해 일어난다. 발작이 일어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환자가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높은 곳의 폐쇄된 공간 속에서 추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비행기 타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언뜻 비행기와 공항이 연상돼 ‘공항장애’라는 말을 쓰기 십상이다. 그러나 공황장애(恐慌障礙)가 바른 표현이다. ‘공황’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뜻하는 말이다.
◇홀홀단신
어디 한군데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홀홀단신’이란 표현을 쓰기 십상이다.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먼 곳으로 이주할 때도 “홀홀단신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홀홀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등처럼 ‘홀홀단신’이란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단신’과 ‘홀홀’이 의미상 조화를 잘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한 표기는 혈혈단신(孑孑單身)이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홀몸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혈(孑)은 ‘외로울 혈’자로, 주로 ‘혈혈하다’ 형태로 쓰이며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는 뜻이다.
◇일사분란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정연한 모습을 얘기할 때 ‘일사분란’이란 표현을 쓰기 쉽다. “분란을 일으키지 마라”처럼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움을 나타내는 단어인 ‘분란(紛亂)’이 있기 때문에 ‘일사분란’이 맞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사불란(一絲不亂)이 바른 표현이다. 한 올의 실(一絲)도 엉키지 않음(不亂)을 뜻하며, 질서 정연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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