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5.22 17:15 수정일 : 2023.05.22 17:18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초등학교 동창모임은 늘 즐겁다. 나이가 들어도 늘 그때 그 모습의 천진난만한 동심이 스멀거린다. 고향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더 정겹다. 타지에서 만날 때보다 마음이 포근하다. 어머니 품 같은 고향에 모처럼 온 친구들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저녁 식사 후에 자리를 옮겨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도심에서 만날 때는 “바쁘다”며 먼저 일어나는 친구가 있었지만, 고향에선 그렇지가 않다. 마음이 일상을 지배하는 걸까.
어릴 적 싱아가 지천, 배고플 때 먹어
친구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국민학생 때 봄마다 점심 먹으러 노고산에 많이 갔다.” 엉,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시절에 도시락을 갖고, 아니 김밥 도시락을 싸가지고 산에 갔다는 얘기인가. 친구들은 모두 어이없어 했다. “야, 1년에 소풍 갈 때 한 번 먹을까 말까한 김밥 도시락일리는 없고,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러자 그 친구는 “너희들도 갔었어. 잘 생각해 봐”라며 뜸을 들였다. “어, 글쎄. 노고산에 학교 소풍 간 적이 없는데. 또 뻥친 거지?”
그때 친구가 말했다. “노고산에 봄에 싱아가 지천으로 있었지. 새콤달콤한 싱아 꺾어먹으면 도시락 먹은 거나 다름없었거든. 그 시절엔 군것질 할 것도 없고 봄에는 싱아 꺾어먹고, 가을에는 고욤 따먹고. 근데 그 많던 싱아는 어디 간 거야? 고욤나무는 아예 씨가 말라 볼 수가 없어.”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그랬던 시절이었다. 달달한 군것질을 생가조차 못했던 시절, 봄에는 싱아가 정말 맛있었다. 껌처럼 씹을 때 나오는 싱아의 싱싱한 맛의 추억이 살아났다.
친구들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산에 참 싱아 많았지. 요즘 아이들은 싱아가 뭔지도 모르지. 근데 싱아도 많이 없어졌어. 별로 안 보여.” 맞는 말이었다. 싱아는 기성세대만 추억으로 기억할 뿐 요즘 세대들은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식물이 됐다. 예전에는 시골 아이들이 봄에 즐겨 먹던 간식 같은 게 싱아였는데, 친구가 옛 생각이 났는지 “도시락 먹으로 노고산에 자주 갔다”고 멋진 은유를 선사하는 바람에 모두가 진짜 동심에 빠지는 행운을 누렸던 밤이었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싱아’ 가슴 뭉클
싱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박완서(1931~2011) 소설가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자전적 소설을 출간하면서 더 많아졌다고는 평가도 있다. 싱아 자체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싱아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출판사는 이 소설의 개정판 표지에 싱아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여 놓았다.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정도로 줄기가 곧으며, 6~8월에 흰꽃이 핀다. 산기슭에서 흔히 자라고 어린잎과 줄기를 생으로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서 예전에는 시골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싱아는 여덟 살 소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한다.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북한의 개풍 본가를 뒤로하고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서울 산동네로 이사한 소녀가 겪은 문화적 충격, 일제강점기 국민학생으로서의 기억, 창씨개명 경험, 세계 2차 대전의 종결, 그리고 6·25까지의 격변기를 지낸 작가의 유년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책을 읽다보면 부모들의 어린 시절 같아 눈물이 핑 돈다. 소설 속 인상적인 싱아를 다시 읽어본다.
속살은 새콤달콤, 입안에 군침 도는 신맛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고향 산천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풀 ‘싱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싱아 얘기를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싱아가 아이들 관심에서 사라지고, 또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문명사회의 변화이자 세월의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시골에서 자란 중년 이상의 세대에는 싱아는 싱그러운 마음의 풀로 남아 있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고 했지만, 필자는 “그 많던 순수함은 누가 다 삼켰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싱아는 순수, 정치도 순수 되찾아야
싱아는 때 묻지 않은 동심 같다. 싱아의 싱싱함은 곧 순수함이다. 시인 피천득은 “오월은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년의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지만, 필자는 “싱아는 고향을 잊지 못하게 하는 중년의 영원한 순수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순수함은 고향의 추억에만 아른거리는 건 아니다. 순수를 잃어버린 정치의 세계에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 순수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보다 위에 있는 정치는 없다. 그런데 민생을 ‘나 몰라라’ 하며 제 잇속만 챙기려는 정파주의가 국민의 힘들게 한다. 겉으로는 순수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위선의 행위를 하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 상임위원회 도중에 ‘코인’ 매매를 한 정치인도 있다. 정치도 싱아와 같은 순수를 되찾아야 한다. 그 많던 ‘순수’는 대체 누가 다 먹어 치운 것인가.

필자 소개 양 영 유
언론인 학자다. 31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정책사회부장, 사회1부장, 행정국장, 사회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과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에서 연수했다. 1964년 양도면 출생. 양도초, 동광중, 선인고, 고려대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언론학(박사)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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