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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종교유산] 온수리 성공회 성당 및 사제관

작성일 : 2023.05.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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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세워진 온수리 성공회 성당. 한옥의 형태로 건축됐다.​​ <사진=바른언론>

강화에는 불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유명한 곳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이에 강화의 종교유산을 소개하고 널리 알리고자 본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번 호는 길상면 온수리 성공회 성당과 사제관이다.


▲솟을대문 형식의 성공회 성당 문루(종탑). 최초에는 서양식 종이 걸려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징발당한 후 전통양식의 종으로 다시 걸었다고 전해진다. <사진=바른언론>

성공회 3대 주교인 트롤로프 신부(한국명 조마가)에 의해 1906년에 건축된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 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강화도에 지어진 대한 성공회의 두 번째 성당이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52호(2003년 10월 27일 지정)인 온수리 성당은 강화읍에 위치한 강화성당(1900년 건축, 사적424호)과 달리 선교본부의 지원이나 선교사들의 주도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신도들 스스로가 땅을 헌납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과 봉사로 지은 성당이다.

성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루란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한다. 건물 외형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한 반면, 내부 공간은 서유럽의 교회 건축 양식으로 구성하여 동서 조합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 옆에 위치한 사제관.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사진=바른언론>

성당과 거의 돌아앉은 사제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Corfe,C.J.)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트롤로프 신부(한국명 조마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초기 선교 당시의 소박하고 순수한 토착미를 엿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 그대로 살아 있다. 현재의 사제관은 한 차례 퇴락을 겪은 뒤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제관은 성당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원래 ‘一’자형의 대문과 ‘ㄷ’자형의 안채 공간이 종으로 배치되어 ‘ㅁ’자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대문이 없어지고 그 흔적으로 계단과 주초 자리만 남아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고요한이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한 사람의 신자도 없었고,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를 베푼 것은 주교 축성이 있은 지 7년 뒤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이 사제관은 외국인이 한국전통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여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온수리 성당 한편에 자리한 조광원 노아 신부 독립운동기념비(위)와 김여수 마태 독립운동순국비. <사진=바른언론>

성당 한편에는 조광원 신부와 김여수 선생의 독립운동기념비와 순국비가 자리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조광원 신부(1897~1972)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과 함께 3·1 운동을 준비했고, 졸업 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조국의 독립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태평양전쟁에는 미 해병대 종군신부로 참전해 능통한 일본어로 대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고, 강제 징집돼 전선에 투입된 조선인 동포를 구하는 데 힘썼다. 조광원 신부는 조국의 독립을 돕고자 박용만(1881~1928)이 설립한 대조선독립단에도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정부는 1999년 조광원 신부에게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온수리 성당 교인이었던 김여수 선생(1922~1945)은 1936~1944년 항일 독립 투쟁 활동을 벌이다가 1945년 2월 25일 대전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에 선생은 1986년 대통령 표창, 1991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한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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