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5.08 16:47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윤중제’는 일본말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의 한자 표기
섬을 둘러쌓은 제방을 뜻할 뿐, ‘방죽’ ‘섬둑’으로 불러야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보아라, 엄복동 자전거-.” 일제시대 국민들 사이에서 불렸던 노래다. 일제에 억눌렸던 당시 “하늘에는 안창남이-, 땅에는 엄복동이-”라 할 정도로 비행사 안창남과 자전거 선수 엄복동은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국민들에게 멋진 비행 시범을 보인 것은 1922년 12월 여의도 비행장에서였다.
옛날에는 여의도를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들 명칭은 ‘넓은 섬’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의도가 물에 자주 잠기는 탓에 ‘너나 가져라’는 뜻의 ‘너의 섬’에서 비롯됐다는 민간어원설도 있다. 조선왕조 때는 이 섬을 국영 목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기에 그리 적당한 곳은 아니었지만 섬 서북쪽에 가축을 키울 만한 곳이 있었기에 그곳에 국영 목장이 조성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에는 일제가 이곳에 비행장을 조성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다. 안창남은 1919년 8월 도쿄 아키바네 비행기 제작소 기계부에서 비행 기술을 배워 1년 후에 도쿄 오쿠리 비행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3달 만에 졸업한다. 1922년 5월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은 여의도 비행장에서 시범 비행을 펼쳤다. 안창남은 한반도 모양을 그려 넣은 금강호를 타고 비행하며 애국심을 드러냈다.
비행사 안창남의 이야기 서린 여의도
안창남의 비행을 보기 위해 당시 서울 시민 30만 명 중 5만 명이 여의도 비행장을 찾아 환호했다고 한다. 안창남은 1924년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여운형의 소개로 산시성 군벌 옌시산의 군대에 항공중장으로 근무했고 대한독립공명단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해 한국인 비행사를 양성했다. 그러나 1930년 4월 산시비행학교에서 비행 교육을 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현재 여의도에는 한강공원과 여의도공원을 잇는 보행터널이 있는데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터널은 서울시가 여의도의 역사를 담아 지난 2010년 4월 여의도 나들목에 재단장한 것이다. 터널 안에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빛나는 영웅, 안창남 비행사’라는 제목의 패널이 그의 사진과 함께 걸려 있으며, 여의도 비행장에 관한 역사와 하늘을 날아다녔던 조선인 ‘안창남’ 비행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여의도에는 이렇게 안창남이 감동을 준 비행장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이 비행장을 제외하면 여의도는 68년까지만 해도 섬이라기보다는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큰 모래밭에 가까웠다. 그러다 여의도는 일대 전기를 마련한다. 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김현옥 서울시장의 추진력으로 여의도 개발 계획이 세워졌다. 68년 밤섬 폭파를 시작으로 110일 만에 섬을 두르는 강둑(7㎞)을 쌓는 공사가 완공된다. 이렇게 방죽이 만들어지면서 침수가 되지 않았고, 여의도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강둑은 ‘윤중제’로, 강둑을 따라 길게 뻗은 도로는 ‘윤중로’로 명명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여의도가 탄생하고 윤중로를 따라 심은 1,400여 그루의 벚나무는 오늘날 서울시민들에게 벚꽃의 향연을 베풀어 준다. 봄마다 펼쳐지는 여의도 벚꽃 잔치를 보통 지명을 따 ‘여의 윤중제 벚꽃 잔치(축제)’ 또는 ‘윤중로 벚꽃 잔치(축제)’라 부른다. ‘여의 연중제 개막식’이라 하거나 ‘여의 윤중제가 시작됐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윤중제’를 축제 이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윤중’이 들어간 학교 이름도 바꿔야
그러나 여의도 강둑에 붙은 ‘윤중제’라는 이름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다. ‘윤중제(輪中堤)’는 일본말인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의 한자 표기를 우리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와주테이’, 즉 ‘輪中堤’는 강섬을 둘러쌓은 제방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윤중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윤중’만 따로 떼어내 그 길을 ‘윤중로’라 명명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학교에도 ‘윤중’이라는 이름이 붙어 ‘윤중초등학교’ ‘윤중중학교’가 아직도 존재한다.
‘윤중제’는 우리 식으로는 ‘방죽’ 또는 ‘섬둑’이다. ‘여의 윤중제’를 ‘여의 방죽’ 또는 ‘여의 섬둑’이라 불러야 한다. 86년 한국땅이름학회의 건의로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여의 윤중제’를 ‘여의 방죽’으로, ‘윤중로’는 각각 ‘여의 서로’, ‘여의 동로’, ‘국회뒷길’ 등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 여의도 방향에서 마포대교 입구(마포대교 사거리)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여의 동로’, 왼쪽 국회 방향이 ‘여의 서로’다. 98년에는 이들 공식 명칭을 새긴 도로명판이 설치됐다.
공식 지명은 바뀌었지만 ‘윤중제’ ‘윤중로’라는 이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3년 만에 여의도 벚꽃 축제가 재개되면서 ‘윤중제’ ‘윤중로’라는 말도 여기저기 다시 등장했다. 일반인의 글은 물론 언론에서도 이러한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여의도가 일제 강점기 비행사 안창남이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준 자리이며, ‘윤중제’라는 이름이 일제 잔재라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다시는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윤중초등학교’ ‘윤중중학교’라는 이름도 어서 바뀌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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