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5.08 16:26 수정일 : 2023.05.08 16:33

▲강화나들길 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 <사진=강화군>
오래전부터 “강화나들길 코스를 완주해 봐야겠다”는 막연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올해 그 목표를 실현에 옮기고자 다짐했다. 여름 날씨를 방불케 했던 5월의 어느 날, 그 첫걸음을 드디어 내딛었다. 그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강화나들길 1코스 기점은 강화터미널이다. 이곳에서부터 18km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사진=바른언론>
낮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강화나들길 1코스 투어를 시작했다. 강화나들길 1코스는 고려시대의 임시수도로서 도서 지역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강화산성, 고려궁지, 용흥궁, 강화성공회 한옥성당과 아늑한 대산마을 벌판을 보며 연미정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들길 곳곳에서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작은 1코스의 기점인 강화터미널. 오며 가며 자주 들르던 곳인데 나들길을 목적으로는 처음 와본다. 그래서인지 왠지 생경한 느낌도 든다. 터미널을 나들길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풍물시장이 보인다. 도로 한편에 펼쳐져 있는 모종들이 정겹다.

▲강화중학교 옆에 위치한 ‘강화동문’. <사진= 바른언론>
다음 목적지인 강화동문을 마주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강화동문의 웅장한 자태가 더 눈길을 끈다. 본래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던 것이 1259년 몽골에 의해 내성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병자호란 때도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고 한다. 동문의 이름은 ‘망한루’로 2004년에 지금이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공회강화성당과 용흥궁의 모습. <사진=바른언론>
다음 목적지는 성공회강화성당과 용흥궁이다. 사적 제424호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성당 입구를 지나면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눈길을 끈다. 이 나무는 1900년 영국선교사 트폴로프 신부가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용흥궁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곳이다.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3년)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용흥궁 건물은 내전과 외전, 별전 등이 1동씩 남아있다.

▲관광객들이 외규장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바른언론>
이제 사적 제133호인 고려궁지로 향한다. 고려궁지에 들어서자마자 그림 같은 풍경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고려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특히 고려궁지 가장 안쪽에 위치한 외규장각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강화향교의 모습. <사진=바른언론>
북관제묘를 찾기 위해 나들길을 여러 차례 오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문의를 하기 위해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온 나들길 담당 부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다른 과로 연결돼 포기하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관련 부서 전화번호가 바뀐 듯한데 이 부분은 조속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인 강화향교.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년) 내가면 고천리에 세워졌다. 이후 여러 차례 옮겨지고 복원되었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영조 7년(1731년) 유수 유척기가 옮긴 곳이다. 대성전에는 5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어 내부로 들어갈 순 없었다. (다음 호에서 계속)
남기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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