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4.03 16:45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아주 어릴 때 밤중이었다. 꼬마는 도회지 얘기가 재미있었다. 집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옛날이었다. 인천에서 겨울방학 중에 할머니 댁에 놀러 온 이웃 형은 극장 얘기를 했다. 대형 스크린에 실제 사람이 나온다니 신기했다. 시골에선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 극장 얘기는 동네 형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꼬마 때 진강산 불, 지금도 잊지 못해
그때 밖에 나갔던 이웃 형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야, 큰일 났어. 진강산에 불났어.” 우리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진강산이 붉게 타고 있었다. 마치 도회지 형이 말한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산불은 무서웠다. 밤새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신비스런 진강산이 지켜보고요~~”로 시작하는 교가를 배웠다. 진강산은 그렇게 크고 신비스런 산이었다. 마니산을 모르던 철부지 꼬마 때이니 더더욱 그랬다.
진강산은 해발 441m다. 2019년 3월에도 화재가 났었다. 임야 50㏊가 불탔다. 그때도 어린 시절의 아린 추억이 생각났다. 자연은 인간에게 경고를 주곤 한다. 수십 년 만의 진강산 산불도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는 마니산이었다. 3월 26일 오후 2시 40분쯤 마니산 초입에서 불이 났다. 축구장 30개 넓이의 산림 22ha가 불에 타거나 시커멓게 변했다. 산불 발생 하루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강화군민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국가 지정 보물이 있는 정수사 등 인근의 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강화군민에게 마니산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백두산과 한라산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1m의 마니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올해도 마니산을 세 번 등반했다. 참성단(사적 136호)은 정상 출입이 통제돼 볼 수는 없었다. 참성단은 개천절에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니 도회지 분들은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터다. 참성단 보호를 위한 안식이 진행 중이니 머지않아 다시 개방할 날을 기대한다.
마니산 산불은 강화군민 ‘마음의 산불’
이번 마니산 산불은 여러 함의를 남겼다. 화재 진압과정에서 군관민의 협력과 군청의 적극적인 행정도 평가할 만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드론’이다. 화재 당시 산림청은 캄캄한 밤에 산불 확산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했던 드론을 활용했다. 드론에는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고 한다. 강풍이 부는 깜깜한 밤중에도 드론을 통해 산불 방향을 파악할 수 있어 소방 당국이 적절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불 진화도 과학시대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소방 드론 6대를 도입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중앙119구조본부와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372대가 있다. 드론 조종 자격증을 가진 소방 공무원도 3379명이다(소방방재청 자료). 소방드론은 연간 600회 이상 가동한다. 재난구조에도 동원되는 드론은 정확한 위치 영상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첨단 장치로 험한 산악지대에는 필수 장비로 각인되고 있다. 강화지역의 장비를 다시 점검하기 바란다.
소나무 숲 100㎡ 타면 CO₂ 54t 배출
이번 마니산 화재에서 보듯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예방이다. 올 들어 건조한 날씨와 강풍까지 이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그 원인은 자연발화는 거의 없고 사람의 실수에 의한 인재(人災)가 대부분이다. 3월 18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산불은 야산 인근 주민이 버린 화목보일러 재에서 불길이 처음 발생했다. 같은 날 일어난 정선군 산불은 논밭에서 농부산물을 소각하던 중 불길이 인근 산으로 옮겨 붙었다.
마니산 화재도 인재로 밝혀지고 있다. 다 사람이 한 일인 것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2~2021년) 동안 연평균 481건의 산불이 발생해 연간 1,087㏊의 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특히 3월과 4월에 화마(火魔)가 많았다. 3월엔 123.6건, 4월엔 105.5건이 발생했다. 연간 발생 건수의 48%가 두 달 동안에 집중됐다. 청명(5일)과 한식(6일)이 있는 4월에도 산불 예방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막는다’는 말처럼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작은 실수 하나를 막기 어려운 법이다.
산불은 예방이 중요, 결국 인간의 몫
전문가들은 2100년까지 산불 발생 건수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경고한다. 올 2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로 산불이 더 빈번히 발생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며 “산불 발생 건수가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산불 피해 면적은 2011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10년 새 160% 이상 증가했다. 산불은 자연을 황폐화한다. 소나무 숲 100㎡가 타면 이산화탄소(CO₂)를 54t 내뿜는다. 이는 자동차 7대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같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더욱이 산불은 CO₂뿐만 아니라 메탄(CH₄), 일산화탄소(CO), 아산화질소(N2O), 질소화합물(NOx)과 같은 비이산화탄소(Non-CO₂) 온실가스도 배출한다. 결국 대형 산불이 증가하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산불이 잦아지면 자연 생태계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산불은 곧 재앙이다. 봄철 산불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니산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산불을 목도한 강화의 꼬마들에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추억이 될 일이다. 진강산 산불이 필자에게 그랬듯이. 오롯이 어른들 책임이다.

필자 소개 양 영 유
언론인 학자다. 31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정책사회부장, 사회1부장, 행정국장, 사회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과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에서 연수했다. 1964년 양도면 출생. 양도초, 동광중, 선인고, 고려대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언론학(박사)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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