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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접속사가 없어야 좋은 문장

작성일 : 2023.03.21 15:52 수정일 : 2023.03.21 15:54

작성자 : 배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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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접속사 없이도 부드럽게 굴러가야 유려한 문장
불필요한 접속사는 군더더기로 글 늘어지게 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로마 최고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며 문필가이기도 했던 카이사르(영어명 시저)가 남긴 명언이다. 카이사르가 소아시아 젤라에서 파르나케스와 벌인 전투에서 승리한 뒤 원로원에 보낸 전문의 내용이다. 전문에는 딱 이 세 마디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여러모로 위대한 인물이지만 대중 앞에서 복잡한 내용을 호소력 있는 한마디로 줄여 말하는 데도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나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 역시 그가 한 말로 그의 말은 간결하면서도 접속사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저가 만약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에 접속어를 넣어 ”왔노라, 그리고 보았노라, 그래서 이겼노라“라고 말했다면 그래도 명언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접속사 ’그리고‘ ’그래서‘가 군더더기로 작용해 문장을 늘어지게 함으로써 글의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간결한 말이 더욱 긴장감을 주고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카이사르는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접속사는 이같이 문장과 문장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군더더기로 문장을 늘어지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뒤 다시 전화를 했다”는 문장을 보자. 접속사 ‘그런데’와 ‘그래서’를 사용해 문장을 적절하게 연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데’와 ‘그래서’가 문장을 늘어지게 만듦으로써 글의 맛을 떨어뜨린다.

특히 이처럼 일이 순서대로 진행될 때는 접속사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그런데’와 ‘그래서’를 빼고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전화를 했다. 마침 그는 자리에 없었다. 조금 뒤 다시 전화를 했다”고 해야 긴장감이 살아나고 글이 깔끔해진다. 불필요한 접속사는 글의 흐름을 방해함으로써 읽는 속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글의 생명은 간결함과 함축성이다.

만약 학교에서 국어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 괄호 안에 적절한 접속어를 넣어 주세요.

아침에 늦잠을 잤다. (   ) 학교에 지각했다. (   ) 다행히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이 ‘그래서’ ‘그러나’를 적어 넣음으로써 정답을 맞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쉬운 문제여서 괄호 안에 들어갈 적절한 접속어를 찾지 못한 학생은 거의 없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문제를 위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접속어를 넣으려면 ‘그래서’와 ‘그러나’를 삽입하는 것이 맞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접속사가 없어야 더 좋은 문장이 된다. 접속사 없이 “아침에 늦잠을 잤다. 학교에 지각했다. 다행히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았다”고 해야 간결해지면서 글의 긴장감이 살아난다. 또 이렇게 하면 글의 리듬도 생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반대로 출제돼야 한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그래서 학교에 지각했다. 그러나 선생님께 혼나지는 않았다”는 문장을 주고 여기에서 불필요한 말을 찾아내라는 문제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접속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글쓰기에 발전이 없다. 접속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연결성이나 긴밀성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된다. 무언가 연결이 잘 되지 않으니까 본능적으로 접속사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접속사가 남용되는 것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에서 뿐만이 아니다. 단락과 단락을 연결할 때도 ‘그런데’ ‘그리고’ ‘그래서’ ‘한편’ 등 불필요하게 접속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 경험이 부족한 사람의 글을 유심히 보면 단락의 맨 앞에는 여지없이 접속사가 나온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사람 중에는 접속사를 사용해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을 부드럽게 이어주라고 가르치는 이가 있기도 하다. 만약 단락의 맨 앞에 접속사가 오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또 접속사가 나온다면 그 글은 온통 접속사로 넘친다. 우스갯소리로 하면 ‘물 반 접속사 반’이다.

글은 시간의 순서나 논리의 순서대로 흘러가게 돼 있다. 일반적인 글은 대부분 시간의 순서대로 서술되고 논술이나 설명문 등 논리적인 글은 논리의 순서대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역사 소설 등에서 이를 거스르는 예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시간이나 논리의 순서대로 굴러가는 경우 대부분은 접속어가 없어도 연결이 잘 된다. 따라서 접속어가 많다는 것은 내용의 연결성과 긴밀성이 부족하거나 전체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된다.

가능하면 접속사 없이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글쓰기를 지도할 때도 가급적 접속사 없이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하도록 가르쳐야 글쓰기가 빨리 발전한다. 접속사 없이도 앞 단락과 뒤 단락,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굴러간다면 이미 수준급의 글쓰기 실력에 도달한 것이다. 진정한 목수는 나무에 못을 박지 않는다. 글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접속사가 많은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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