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2.22 14:37 수정일 : 2023.02.22 14:42
작성자 : 배상복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전화가 귀하던 시절 이장집이나 이웃집에서 받을 때
집에 잘 들어가란 의미로 “들어가세요” 인사 주고받아
과거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이장 집에 한 대 있어서 전화가 걸려오면 이장은 동네 스피커로 “○○○씨 전화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라고 방송하곤 했다. 이 소리가 나팔꽃처럼 생긴 옛날 스피커의 특이한 메아리를 타고 동네를 울려 퍼졌고 호명되는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이장 집으로 달려가 반가이 전화를 받았다.
중소도시에서는 우체국에 가서 전화를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우체국이 전화국 업무를 함께 했다. 어디 누구네 집 또는 어디 몇 번이라고 신청하면 몇 십 분을 기다려야 그곳으로 연결됐다. 그러면 몇 개의 전화 부스 가운데 지정하는 곳에 들어가 그쪽과 통화할 수 있었다. 부모님 또는 이성 친구와 이런 식으로 통화를 했다. 집에 전화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차츰 동네에 한둘씩 전화기를 놓는 집이 생겨났고 이런 이웃집 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대부분 자신의 집이 아니라 전화기가 있는 장소로 이동해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을 때는 집에 잘 들어가라는 의미로 이쪽에서 “들어가세요” 하면 저쪽에서도 “네. 들어가세요”라면서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연히 “들어가세요”라는 말이 입에 뱄다.
전화를 끊을 때 왜 “들어가세요”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견해다. 전화 교환원을 통해 “누구누구 좀 대주세요”라고 하면 그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끊을 때 “들어가세요”라고 하게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집 전화는 주로 거실에서 받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므로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냐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들어가세요”는 맞지 않는 인사란 견해 있어
어쨌거나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 드신 분들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립국어원에는 이에 관한 질문이 여럿 올라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란 말이냐고 묻는다. 이런 경우 딱히 한마디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의미가 바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한국 사람 가운데도 “들어가세요”란 인사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 화법 해설'에도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을 때 “안녕히 계십시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만(그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인사하는 것을 생활화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들어가세요"라는 인사도 많이 하지만 이 말은 명령형이고 일부 지방 사람들이 주로 쓰며, 상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하고 있다.
“들어가세요”의 단순 의미만을 생각하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지금의 문화에선 맞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화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어디 들어갈 데가 없다. 집도 아니고 방도 아니고 정말 어디 들어갈 데가 없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이 늘 그렇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한 어원도 모르면서 사용되는 것도 많고 본래 의미에서 멀어진 단어나 표현도 수두룩하다.
"들어가세요"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대체할 인사법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이만(그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를 보자. 이 말은 언뜻 보면 옳지만 실제로 전화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일상에서는 "이만 끊겠습니다"는 화가 난 경우나 불만이 있는 경우에나 쓰는 표현이다. "안녕히 계십시오"도 글에서나 쓰지 입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차라리 "안녕히 계세요"가 입말로는 더 자연스럽다.
‘-세요’는 명령뿐 아니라 설명·의문·요청의 뜻으로도 널리 쓰이는 종결 어미다. "들어가세요"가 명령형이어서 곤란하다는 것은 "많이 드세요" "어서 오세요"가 명령형이어서 곤란하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는 명령형이라기보다는 공손한 요청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들어가세요”는 우리의 정서 머금은 인사법
더군다나 상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은 무슨 근거로 이렇게 판단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들어가세요"가 격식이 대단히 높은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스럽다(천하고 교양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주 아주 지체가 높으신 윗사람이라면 몰라도 조금이라도 친근감이 있는 윗사람이라면 "들어가세요"는 충분히 가능한 표현이다. "들어가세요"라고 했다고 해서 상스럽다고 느끼는 윗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끊을 때 어떤 말을 써야 할지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표현이 좋다고 하기 어렵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이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는 실제로 전화 통화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안녕히 계세요"로 바꾸어도 때로는 어색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들어가세요"가 문제가 있으니 "안녕히 계십시오"나 “안녕히 계세요”로 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이고 언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머금고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인사법을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들어가세요"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지금은 굶고 사는 사람이 없으므로 "밥 먹었어요"란 인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들어가세요"도 그렇지만 "밥 먹었어요" 또한 세계 유일의 우리식 인사법이다. “그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식의 기계음처럼 딱딱한 인사보다 “들어가세요”가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들어가세요"를 비롯, 각자 상황에 맞게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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