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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세상 촉] 강화도 사투리와 신세대 사투리

작성일 : 2023.02.08 15:18 수정일 : 2023.02.08 15:22

작성자 : 양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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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춘삼월, 경향 각지에서 모인 장발의 청춘들이 낯선 대면을 시작했다. 지방색이 강했다. 당연히 인터넷과 핸드폰은 물론이요 텔레비전조차 가난한 학생들의 자취방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나 신문이 세상 소식을 접하는 창구였다. 양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반쪽 창구는 답답했다. 그것도 군사독재 시절이니 왜곡된 정보가 전파됐다. 그런 상황에서 갓 까까머리를 탈출한 청춘들은 열띤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내곤 했다.

말은 투박하고 낯설었다. 경상도·전라도·제주도·충청도 방언(사투리)은 거의 처음 들었다. 방송 등을 통해 사투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어린 시절 강화도에서 지방 사투리를 듣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화도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분들도 계셨겠지만 집과 학교를 오가던 학생이었으니 그런 분들의 말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 오로지 동네 분들과 학교 친구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으니 남녘의 사투리를 직접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투리는 지역의 정, 잘 고쳐지지 않아

대학에서 만난 지방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고향에서 끼리끼리 살다보니 말투가 지역사회에 좁은 울타리에 머물렀다. 사투리는 해당 지역에선 고급 표준어였다. 그런데 대학에서 처음으로 경향 각지의 현란한 사투리를 들으니 헷갈렸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말투가 그랬다. 어색했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자 익숙해졌다. 친구의 말투도 점차 서울 말씨를 따라가기는 듯했다. 그래도 특유의 억양과 발음은 여전했다. 

요즘은 통신과 방송이 발달해 지방색이 옅어졌다. 지방의 어린이 말투는 서울 어린이 말투와 비슷하다. 다만, 어른들은 어린 시절부터 말 습관이 밴 터라 고쳐지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6시 내 고향’을 보면 어르신들의 구수한 사투리가 참으로 정겹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직도 수도권에서만 성장한 이들에겐 지방의 말투는 어색하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말은 그만큼 남다르고 소중하다.

“안녕하셔씨까”…강화 사투리 정겨워

필자는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줄 착각했다. 강화에서 자랐으니 서울말씨와 다를 바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도 사투리를 쓴다”며 웃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할 때였다. “짜장면 두 그릇 주시겨”, “알가씨다”, “안에 계시꺄?”, “잘 가시겨”, “우리 할머이, 우리 오잘머니, 우리 오자라부지가 그랬어”, “지패이가 어딨지?”, “부케서 불때지” 등등 나도 모르게 강화 사투리를 쓰니 친구들이 그랬던 것이다.

사실 강화에도 사투리가 있다. 강화문화원이 발행한 『강화사』가 꼽은 대표적인 방언을 보자. “안녕하십니까(안녕하셔씨까), 오셨습니까(오셔시까), 계십니까(계시까), 계십시오(기시겨), 오십시오(오시겨), 노래 하세요(노래 하시겨), 담배 1갑 주세요(담배 1갑 주시겨)” 등은 강화의 대표적인 방언이다. “냉이(매이), 웅덩이(웅데이), 구렁이(구레이), 구덩이( 구데이), 지렁이(지레이), 원숭이(원세이), 호랑이(호래이), 고양이(괘이)”는 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다. 

대학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그런 사투리까지는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강화 집에만 오면 그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동네 분들과 얘기할 때면 자연스럽게 말투가 달라진다. 지금도 그렇다. 사투리를 몸이 기억하고 머리가 기억하고 입이 기억하는 거다. 그게 고향의 정취 아닐까. 고향 초등학교 모임은 ‘강화판 극장’이다. 고향 친구들의 입은 살가운 말의 향연장이다.

신세대는 축약어 애용, 문해력은 심각

요즘 청소년은 자신들의 언어를 즐긴다. 일종의 ‘청소년 사투리’다. 스마트 폰에는 ㄱㅅㄱㅅ(감사감사), ㅊㅋㅊㅋ(추카 추카, 축하 축하), ㅎㅎㅎ(하하하, 히히히), ㅋㅋㅋ(크크크, 키키키), ㅊㅊㅊ(츠츠츠), ㅋㄷㅋㄷ(키득키득) 같은 문자가 현란하다. 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 BBC방송은 한 초등생이 쓴 에세이에 나오는 b4(before), gr8(great)과 같은 축약어 사례를 소개했다. 대학생은 ‘햄릿’의 경구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를 ‘2b or not 2b that's’로 쓴다고 전했다. 

우리 청소년은 특히 축약어를 좋아한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저메추’(저녁 메뉴 추천) 같은 말이 유행한다. 그런데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자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웃긴 일이 생긴다. ‘중식 제공’이라고 하자 ‘한식으로 주세요’라고 한다거나,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게 반납하라’는 문구를 보고 ‘도서관에 책을 사서 반납했어요’라고 말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정치권 소통 장애, “정신 차리시겨!”

사흘 연휴를 4일 연휴로,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는 어린이들이 잘 모르고 아예 한자를 모르니 문해력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백을 가르치곤 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예순이 몇 개냐고 물어보면 몇 명이나 ‘60’이라고 대답할까. 어린 시절 언어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 

강화 사투리와 지방 사투리는 고향을 대변하는 살아있는 언어다. 하지만 요즘은 사투리의 경계가 무너지고 소통에 장애가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권만 소통이 먹통이다. 끼리끼리 그들만의 언어를 고집하며 진영 간 말을 섞지 않는다. 그들만의 화법은 곧 소통 불량을 초래하고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 정파에 매몰된 언어는 신세대 언어보다 더 피곤하다. 국민이 정치권의 끼리끼리 화법에 난청이 됐으니 말이다. 정치인들, 정신차리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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