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2.08 15:14 수정일 : 2023.02.08 15:18
작성자 : 배상복
<배상복 작가 / 前 국립국어원 표준어 심의위원>
대보름은 세시풍속이 몰려 있는 커다란 명절
다양한 음식과 놀이로 건강·안녕·풍요 기원
지난 5일은 대보름이었다. 대보름이란 음력 정월 보름(음력 1월 15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그해에 처음으로 보름달이 뜨는 날로 정월 보름·정월 대보름 등으로 부른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이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1년 동안 개인과 공동체가 안녕과 풍요를 누리기를 기원하면서 다양한 풍속을 행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보다 오히려 정월 대보름을 더 성대하게 보냈다고 한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큰 축제였다. 우리의 세시풍속 가운데 전체의 거의 절반이 정월(1월)에 행해졌으며, 그 가운데 반 이상이 대보름날 하루에 몰려있을 정도로 대보름은 커다란 명절이었다고 한다.
대보름에는 오곡밥·진채 등 특별한 음식을 해먹었고 부럼을 깨물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 겨울철에 구할 수 있는 음식거리를 모두 동원해 잘 먹고 노는 날이 바로 대보름이었다. 대보름에 이처럼 다양한 음식을 해서 먹는 것은 곧이어 다가올 농사철에 대비해 미리 영양을 보충하자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인 세시풍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부럼 깨물기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물어 먹는 관습이 있다. 부럼이란 대보름날 새벽에 깨물어 먹는 딱딱한 열매류인 땅콩·호두·잣·밤·은행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런 것을 깨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고 한다.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견과류를 먹음으로써 건강을 챙길 수 있기에 이러한 관습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오곡밥과 진채
대보름에는 찹쌀·기장·수수·서리태·적두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으면서 건강과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쌀에 부족한 단백질과 비타민은 팥에서, 지방질은 조에서 각각 보충할 수 있어 오곡밥은 흰밥보다 영양 면에서 이상적이라고 한다. 오곡밥은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미리 지어서 아홉 가지 나물과 함께 먹었다. 이때 먹는 나물을 진채(陣菜)라고 하는데 여름에 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먹는 묵은 나물을 뜻하는 말이다. 박·버섯·콩·순무·무잎·오이·가지껍질·시래기 등이 진채에 포함된다.
◆귀밝이술(이명주)
대보름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귀가 밝아지라고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한글로는 귀밝이술이라 하며, 한자어로는 이명주(耳明酒)·명이주(明耳酒)·치롱주(治聾酒)·이총주(耳聰酒) 등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밝이술을 마셨다고 한다. 귀밝이술을 마실 때 어른들은 “귀 밝아라, 눈 밝아라”라는 덕담을 한다. 평소에는 함께 술자리를 하기 어려웠던 부자지간에도 귀밝이술을 함께 마셨다고 한다.
◆지신밟기
지신(地神), 즉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는 민속놀이다. 풍물패들을 선두로 소고패, 양반, 하동, 포수, 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집집마다의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풀이 가사가 담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익살과 재주를 부리고 노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건강, 풍작을 축원하는 민속놀이다. 지신밟기패가 자기 집에 도착하면 주인은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돈과 곡식을 성의대로 희사하면 그것을 모아 마을의 공동비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달집 태우기
대보름날 달이 뜰 때 모아놓은 짚단과 생소나무 가지를 묶어 무더기로 쌓아올린 달집을 세운 다음 불에 태워 놀면서 풍년을 기원하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다.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면 신나게 농악을 치면서 춤을 추고 주위를 돌며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달집이 화염에 활활 잘 타오를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그 해에는 풍년이 들 것이라는 징조라고 한다. 달집 태우기는 요즘도 지역별로 행해지고 있는데 올해도 민속촌, 남산골 한옥마을, 해운대 등 많은 지역에서 달집 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쥐불놀이
대보름날에는 마을마다 청소년들이 자기네 마을 부근에 있는 밭두렁이나 논두렁에다 짚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웠다. 불은 사방에서 일어나 장관을 이루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 한다. 이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불의 기세가 크면 좋다 하여 이날은 각 마을이 서로 다투어가며 불의 기세를 크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이날 들판에 불을 놓는 것은 쥐를 박멸하고 논밭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연 날리기
연을 날리는 시기는 대체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인데 정월 대보름이면 절정에 달한다. 설부터 날리던 연은 보름에 실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내는데, 이렇게 해야 자신의 액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 해의 모든 액을 연에 실어 날려 보낸다고 해서 이 연을 ‘액막이연’이라고도 한다. '액(厄)연'을 띄운다'고 해서 연에다 '厄'자를 써서 날리고는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모두 풀고 실을 끊어서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올해 각 지역에서는 대보름 연날리기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더위 팔기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으로, 한자어로는 매서(賣暑)라고 한다. 대보름날이 되면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웃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친구에게 이름이 불린 아이가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하고 외친다. 이렇게 하면 먼저 이름을 부른 사람은 더위를 팔게 되고, 대답을 한 사람은 친구의 더위를 산 셈이 된다. 그러나 친구가 더위를 팔기 위해 이름을 부를 것을 미리 알았을 때는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친다. 그렇게 하면 더위를 팔려던 아이가 오히려 더위를 사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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