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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의병 열전] 16. 황재호 의병장, 이호춘·한금용·황우찬 의병

작성일 : 2023.01.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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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화에서 의병 활동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순국하거나 투옥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료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강화 의병들의 공적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잠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2020년 11월 4일 인천대학교(이사장 최용규)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강화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신청’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강화군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 침략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30명을 추가 발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강화군은 현재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 및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강화 의병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를 연재해 왔다. 그 결과 이번 호를 포함해 총 16편의 시리즈에서 46명(기포상자 16명, 신규발굴 미포상자 30명)의 독립운동가(의병)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아직은 사료 발굴이나 연구가 미흡한 부분이 많아 아쉬움도 크지만 조국과 지역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느낀 바가 크다. 필자가 느꼈던 울림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졌길 바라본다. 

강화 의병 열전 시리즈의 마지막은 강화군에서 추가 발굴한 미포상 독립유공자인 황재호 의병장, 이호춘·한금용·황우찬 의병에 대한 이야기다.

황재호 의병장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1876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양주군 산내면(山內面)

황재호(黃在浩) 의병장은 경기도 양주 출신 군인으로 1907년 8월 군대해산 후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의 기록에는 경기지역 의병장 명단 맨 처음에 등장할 정도로 30~200명의 의진을 형성하여 양주·고양·파주·적성 등지에서 김수민(金秀敏)·연기우(延起羽)·윤인순(尹仁淳)·이은찬(李殷瓚) 의병장 등의 의진과 연계하고, 강화도에서는 지홍윤(池弘允)·박계석(朴啓石) 의병장의 의진과 연계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황재호 의병장의 의진에서 활약하다 피체된 추삼만(秋三萬) 의병은 교수형, 정충환(鄭忠煥) 의병은 징역 5년, 목자상(睦子商)·김수동(金守同) 의병은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황재호 의병장의 피체기록은 없으나 1909년 4월 이후 일제의 기록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경기지역 ‘의병 대토벌’ 때 전사 순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호춘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위량면(位良面) 산문동(山門洞)

이호춘(李浩春) 의병은 강화 출신으로 1907년 4월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호종(護從)하고 돌아온 이능권(李能權)이 이준 열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퇴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으킨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에서 김추옥(金秋玉)·여만복(呂萬卜)·유성준(兪成俊) 등과 더불어 핵심 참모로 활약하였다. 

그는 대동창의단 참모로서 강화군 길상면, 상도면 등지에서 총기 구입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였고, 1908년 음력 11월 1일 전등사(傳燈寺)에 묻어둔 총기 2정을 주지 송계찬(宋戒燦)이 일본군에 넘긴 죄를 물어 수장하는 등의 일을 하다 피체, 원심 재판의 피고인으로 나오지만 판결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위량면(位良面) : 현재의 양도면. 조선시대 이후 하도면과 마주하면서 옛 진강현의 부치쪽 곧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상도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위량면(位良面)과 합하고 위량면에서 양(良)자와 상도면에서 도(道)자를 따서 양도면이라 칭하였다.

 

한금용·황우찬 의병

본적 : 미상
생년월일 : 미상
독립운동 당시 주소(한금용)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읍내면(邑內面) 동문동(東門洞)
독립운동 당시 주소(황우찬) :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읍내면(邑內面) 국화동(菊花洞)


한금용(韓今用)·황우찬(黃禑鑽) 의병은 강화 출신 잡화행상(雜貨行商)으로 함께 1908년 음력 6월부터 양력 11월까지 강화도의 일본병, 헌병, 경찰관 동정을 살펴서 지홍윤(池弘允) 의진에 이를 제공해 오다가 지홍윤 의진의 중대장 박계석(朴啓石)·고부성(高夫成) 등이 피체되어 혹독한 심문을 당하면서 두 사람도 피체된다. 심문 과정에서 한금용과 황우찬이 의병장과 의병의 많은 주소와 성명을 자세히 알고 있음에 이른바 ‘폭도 밀정’ 혐의로 송치되었는데, 판결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잡화행상 :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상생활에서 쓰는 잡다한 물품을 파는 사람.

조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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